허허벌판 버려져도 꿋꿋이 일어나 … "나는 고려인이다"
▲ 연해주에서 강제로 이주한 고려인들이 첫발을 내디딘 우슈토베역
▲ 고려인 3세인 김 예브게니아 선생님이 고려인 학교의 현황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 고려인들이 최초로 정착했던 바스토베 언덕에 세워진 정착비. 지금은 고려인들의 공동묘지로 변했다.
고려인 화물열차로 우슈토베 첫 이주

토굴 파고 갈대 지붕지어 겨울 버텨

황무지서 농사 … 토굴엔 정착기념비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인 1937년 10월, 시베리아 연해주에 살고 있던 17만 여명의 고려인은 이유도 모른 채 강제로 화물기차에 태워졌다. 무고한 그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쓰러지는 죽음들을 목격하며 공포 속에서 한 달을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중앙아시아의 황량한 벌판에 버려졌다.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역사 중에서도 가장 비극적인 사건인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가 집행된 것이다.

고려인이 처음 도착한 곳은 카자흐스탄의 우슈토베다. 고려인들은 이곳을 시작으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전 지역으로 흩어졌다.

이주는 우즈베키스탄의 서쪽 끝인 아랄해 부근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고려인은 절망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의 강인함과 지혜로움은 마침내 황량한 벌판을 옥토로 만들었다.

그리고 80년이 지난 오늘, 중앙아시아 소수민족 중 단연코 으뜸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인천일보는 경기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80년 삶의 궤적을 추적하였다. 취재팀은 초기 고려인들의 삶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에서부터 오늘날 각계각층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고려인들까지 만났다.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까지 이어진 총 7000㎞의 길. 그 길은 곧 고려인의 삶이자 디아스포라 80년의 역사 그 자체였다. 인천일보는 오늘부터 총 7회에 걸쳐 고려인 디아스포라 80년, '시르다리야의 아리랑'을 연재한다. 이를 통해 고려인들의 발자취와 현주소, 그리고 그들의 소망을 전달할 것이다.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를 출발한 취재팀은 4시간이 지나서 300킬로미터 떨어진 우슈토베역에 도착했다.
이 역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이 첫발을 디딘 곳이다. 허름한 기차역은 옛 소련시절 그대로일 터이지만, 이제는 여객보다는 화물열차들만 길게 늘어서 있다.

1937년 10월, 강제로 끌려온 고려인들은 아무런 연고도 없이 이 역에 내렸다. 지금은 역에서 약 1㎞ 정도 떨어진 곳에 우슈토베 마을이 있지만 당시에는 허허벌판이었다. 10월의 차가운 바람은 아무런 준비 없이 맨 몸 뿐인 고려인들의 가슴을 더욱 세차게 파고들었을 것이다.

우슈토베역에서 북쪽으로 2㎞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바스토베 언덕. 이곳은 고려인들의 첫 정착지이다. 언덕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사방을 둘러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고려인들은 언덕의 경사면을 바람막이로 삼아 토굴을 파고, 주변의 갈대로 지붕을 만들어 겨울의 추위를 이겨냈다.

고려인들은 이듬해 4월에 지금의 우슈토베 마을로 옮겨왔다. 황무지를 일구어 논밭을 만들고 소중히 간직한 종자로 농사를 지었다. 한 알의 씨앗이 많은 결실을 맺듯이 그렇게 고려인들은 고난의 삶을 이겨내고 굳건히 뿌리를 내렸다.

지금도 당시 토굴의 흔적이 남아 있다. 토굴을 파고 살았던 곳에는 최초 정착 기념비가 세워졌다. 카자흐스탄의 고려인협회가 2012년에 세운 것이다. 올해는 이주 8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행사를 하며 조그마한 광장도 만들었다.

바스토베 언덕은 공동묘지로 변했다. 많은 고려인들이 이곳에 묻혔다. 맨 앞줄에는 1세대들의 한글 묘지명이 나란하다. 쇠로 만든 묘지명은 머나먼 이국땅에서의 풍파를 오롯이 간직한 듯 붉은 녹만 가득하다. 노동영웅 묘지도 보인다. 고려인은 여타 소수민족 중에서 가장 많은 노동영웅을 배출하였다. 고려인들의 노동력과 농업기술은 오늘의 중앙아시아를 풍요롭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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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 예브게니아 '코쉬카르바예프 학교' 선생님
"한국어·문화 잊으면 안돼 … 역사 알아야 미래가 있다"

"고려인들은 어디에서든 학교부터 지었습니다."

바스토베 언덕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코쉬카르바예프 학교. 이 학교는 1938년에 고려인이 세운 학교다. 고려인 3세 김 예브게니아 선생님이 취재팀을 반갑게 맞이한다. 우슈토베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고려인들은 학교부터 지었다. 이 학교는 고려인이 만든 첫 번째 학교다.

"개교 당시에는 5명의 학생과 8명의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교육열이 강한 고려인들은 자녀들의 교육에 온 정열을 쏟았습니다." 교실 복도에는 이 학교의 졸업생과 선생님들의 사진과 이름이 걸려있다. 80년 학교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역대 교장들도 모두 고려인이었는데 최근에 와서야 바뀌었다. 유명한 소설가인 아나톨리 김도 이 학교를 졸업했고, 그의 부친은 교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236명의 학생 중 고려인은 56명뿐 입니다." 20년 전만 하여도 이 학교에는 70% 이상이 고려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보다 나은 삶을 찾아 대도시나 외국으로 떠났다. 고려인들만 살았던 마을은 이제 한 두 가구에 지나지 않고 고령의 노인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우리 학교는 85년부터 한국어를 가르친 최초의 학교입니다." 방과 후 활동으로 시작된 한국어 공부는 1992년부터 정식으로 교과수업이 되었다. 이곳에서 한국어를 공부한 학생들 중에는 한국의 고교와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도 있다.

김 예브게니아 선생님은 알마티국립대에서 한국어과를 졸업하고 이 학교에 부임했다. 한국어를 전공하자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셨다고 한다. 김 선생님은 할머니가 들려주신 고국에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학생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오늘도 열정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이제는 모두 대도시로 떠나지만 그 뿌리인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잊으면 안 됩니다. 역사를 알아야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고려인들은 오늘도 우리의 전통을 가르치고 있고 학생들도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이 학교는 내년 10월이면 개교 80주년이다. 이를 위해 벌써부터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개교 80주년 기념식에 고려인 학생은 몇 명이나 참석할까. 학생 수는 줄어도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가르치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가 중앙아시아 고려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응원해야 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중앙아시아 고려인 강제이주 80년 특별취재팀
/카자흐스탄(우슈토베)=남창섭 기자 csnam@incheonilbo.com
허우범 작가 appolo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