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나는 우리 조국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번영을 추구하는 국민 모두의 절실한 염원을 받들어 우리 민족사의 진운을 영예롭게 개척해 나가기 위한 나의 중대한 결심을 국민 여러분 앞에 밝히는 바입니다." 1972년 10월17일. 이른바 박정희 대통령 특별선언(大統領特別宣言), 다른 말로 '10·17비상조치'의 첫 구절은 위와 같은 말로 시작된다. 그날 19시를 기점으로 대한민국 국회가 해산되었고, 유신(維新)이 시작되었다. 유신이란 모든 것이 개혁(改革)되어 새롭게 되는 것, 묵은 제도(制度)를 아주 새롭게 고친다는 뜻이다.

대통령 특별선언의 주요내용은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 및 정치 활동 중지, 헌법 일부조항의 효력 정지, 비상조치 아래에서 실시된 국민투표(11월21일, 투표율 91.9%, 찬성 91.5%)를 통해 유신헌법을 제정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새롭게 개혁하고 조국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번영을 추구하여 민족사의 진운을 영예롭게 개척해나가겠다는 유신헌법이 발효된 1972년 12월27일부터 박정희 대통령이 죽던 1979년 10월26일까지를 역사가들은 유신체제 또는 유신독재라고 부른다. 유신체제 아래에서 대통령은 국회의원의 3분의 1과 모든 법관을 임명하고, 긴급조치권 및 국회해산권을 가지며 임기 6년에 제한 없이 연임할 수 있게 되었다. 유신체제는 한 마디로 말해 종신 집권할 수 있는 대통령이 행정·입법·사법권을 모두 차지하는 1인 영도의 제왕적 대통령제였다. 유신헌법 제53조에 규정된 대통령 긴급조치(緊急措置)권은 유신체제를 지키는 초헌법적 권한이었다. 대통령의 행정명령 하나만으로도 국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해 무제한의 제약을 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긴급조치권의 발동을 요하는 비상사태에 대한 판단은 대통령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었다.

대통령의 특별선언 전문(全文)을 구해서 읽다보니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는 자유 민주 체제보다 더 훌륭한 제도를 아직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제도라 하더라도 이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때에는 이 민주 체제처럼 취약한 문제도 또한 없는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역사는 이 말만큼은 진실이었음을 입증해주었다."

/황해문화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