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국 인천환경연대 회장
필자는 삼국지와 초한지, 사마천의 사기를 일독하고 요즘 다시 재독을 한다.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과는 대화를 하지 마라"는 말이 새삼 다가온다. 이집트 피라미드와 그리스 경기장 등 많은 서구의 고대문명만 숙지하고 있지 중국의 고대문명은 잘 모르고 있던 게 사실이다.

중국의 첫 문명 발상지는 서기 2700년전의 황하문명이다. 최초 헌원 황제와 복희씨, 신농씨, 태호씨가 3황으로 중국을 기획했다. 5제로는 1대가 헌양, 2대가 전욱, 3대가 제곡, 4대가 도당(요), 5대가 순황제이다. 요순시대에 이어 하왕조가 건국된다. 1대왕이 우임금이다. 하나라는 17대 걸왕까지 330년간 존속됐다. 그 다음이 은왕조로 1대가 탕왕이며 30대 신왕(수·주)까지 554년간 유지됐다. 30대가 서기 전 1600년~1046년까지인데, 주왕이 음탕해 그 유명한 세기의 여색 달기와 놀며 정사를 돌보지 않아 망했다. 이 때 왕자인 백이숙제가 나라 망조에 환멸을 느끼고 곤륜산에 숨어서 고사리로 연명하면서 살다가 굶어 죽었다. 주나라의 경우 1대왕이 곡이고 무왕이 졸한 해(서기 전 1116년)에 이른다. 그런데 은나라 주왕이 기자를 조선왕으로 봉했다고 사기에 나오는 것은 기자조선이 존재했음을 말한다. 기자의 시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데, '홍범주구'란 시이다.

주나라가 망하고 춘추시대에 접어든다. 기원 전 770년부터 480년까지 290년간 유지됐다. 지금도 벗 간 깊은 우정을 말하는 '관포지교'란 말은 춘추시대에 있던 관중과 포숙의 일화이다.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를 쳐 승리를 거둔 시기이다. 전국시대는 기원 전 489년부터 221년까지 259년간이다. 진·초·연·제·한·위·조 등 30여 개국으로 분열돼 있던 중국이었다. 그러나 기원 전 221년 진시황에 이르러 비로소 중국의 완전 통일을 이루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4군자가 있었으니 제의 맹상군, 조의 평원군, 초의 춘신군, 위의 신릉군이다. 이들 중 맹상군만 소개한다. 진나라 소왕이 간신에 속아 맹상군을 죽이려 하자 머리가 비상한 맹상군은 소왕후 마마에게 부탁했다. 왕후가 맹상군이 입고 있는 횐 여우 가죽으로 만든 외투를 요구해 외투를 주고 살아나 조국인 제나라로 달아난 일화다. 진나라 소왕이 55년간 집정으로 장수한 후 태자 안국군이 재위 1년 만에 죽고(서기 전 250년) 태자 자초(장양왕) 역시 3년 만에 죽어 태자 정이 13세에 즉위하니 이가 진시황이다. 여씨춘추는 여불위의 작품이기도하다. 여불위 부인이 절세의 미녀임에 자초가 호소해 빼앗아서 자기 아내로 삼았다. 이때 이미 진시황을 임신했으니 장양왕 자식이 아니라 여불위 자식이었던 셈이다.

진시황 32년에는 70만 인부를 동원해 만리장성을 쌓았다. 농수로 1000㎞를 설치했으며, 다음 해에는 자기의 무덤을 미리 구축하였다. 궁녀와 신하 등 3000명을 생매장시켰고, 다음 해에는 자기를 지켜줄 군사 6000명의 용갱을 만들었다. 진시황은 폭정을 일삼다 49세인 기원전 210년에 죽었다. 아들 해제도 즉위 후 4년 만에 죽고, 그 아들 자영이 또 3년 만에 초나라 항우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진나라는 망했다. 항우는 70만명의 한나라 군사를(백성 포함) 깊은 계곡에 생매장하는 비정한 폭군으로 횡행하다 한군에 밀리자 자결을 한 장군이었다. 초한전의 내용이다.

유방은 착한 인물로서 진평과 장량 같은 지략가 보조로 통치하다가 기원전 194년에 죽고, 혜제·문제·경제·무제로 강국을 이뤘다. 무제(기원 전 146년) 때 사기의 저자 사마천이 탄생하였다. 그는 사기열전 등 130권의 사기를 저술했다. 4700년 전 황제 전욱부터 한무제 말까지 역사를 기록했다. 삼국지는 한나라 400년 중 후한의 애제 후 촉한의 유비, 위의 조조. 동오의 손권 등 3국이 60여 년간 대치 중 후한에 망한 것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