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제연구원 이사장

#1973년. 미국의 핵미사일 조작원인 해럴드 헤링 소령은 "나에게 내려진 핵미사일 공격명령이 제정신인 대통령으로부터 나온 건지 어떻게 알 수 있겠나?"하고 문제를 제기했다가 강제예편됐다. 하긴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술주정이 좀 있었고 탄핵이 임박했었다. 하지만 냉전 중 대통령의 핵공격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즉각 대응이 최우선이다. 지금도 알루미늄에 검은 가죽으로 싼 18㎏의 가방을 핵보좌관이 항상 대통령 옆에 들고 다닌다.

대통령이 핵공격 명령을 하려면 가방을 열고 1800기의 핵무기의 발사 옵션에 대한 핵보좌관의 설명을 듣고 정한다. 보안카드의 본인 인증코드를 입력한다. 국방장관은 인증코드의 진위를 확인한다. 비토권은 없다. 입력된 코드를 전달받은 부대에선 4분 내에 두 명이 단추를 누른다.

#1983년 9월26일. 소련 모스크바 외곽 핵전쟁 관제센터의 당직인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 중령에게 날카로운 경보가 들렸다.

미국에서 모스크바로 날아오는 다섯 기의 핵미사일을 감지한 인공위성이 보낸 신호다. 그는 지휘부에 보고하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기다렸다. 기술적 착오로 보이는데, 이를 판단할 수 없는 지휘부는 즉각 반격 명령을 내릴 것이고 그러면 핵전쟁이기 때문이다. 23분을 기다렸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결국 구름에 의한 빛 반사로 밝혀졌다. 그는 당시 허술한 시스템의 산 증인으로 떠밀려 전역했다. 한 때 제3차대전을 막은 영웅으로 언론에 조명됐지만 지난 5월 조용히 숨을 거뒀다.

인류의 파멸이 몇몇의 손에 달렸다는 것도 놀라운데 혹여 그 중 광인이 있으면? 한 명의 오판으로 결국 단추가 눌러지면? 그런 일은 100% 없다고 단언할 수 있나? 곧 전쟁을 벌일 것 같은 김정은과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이 미치광이(Madman) 전략으로 알려진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트럼프의 책 '거래의 기술'에 나와 있듯 예측 못하게 압박해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것이다.

김정은은 경제제재로 흔들리는 내부를 결속하려고, 트럼프는 닉슨의 탄핵찬성률을 넘는 국내여론을 돌리려고, 전쟁카드를 흔든다는 시각도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저서 '십자군 전쟁'에서 "전쟁은 인간이 여러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할 때 떠올리는 아이디어"라고 했다.

교황 우르바누스2세는 1076년 카노사에서 굴욕을 당한 하이인리 황제의 반격으로, 15년간 정해진 거처없이 밀려 다녔다. 그는 "신이 그 것을 바라신다"는 한마디로 십자군을 규합해 예루살렘에 보냈다. 교권을 강화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북한의 8배가 넘는 세계 10위 국방비로 전쟁을 준비했지만 평화를 바라는 한반도 하늘엔 먹구름이 잔뜩이다. 그럼 우리도 핵을 개발해야 하나? 기술적으로 6개월이면 된다는 설도 있다. 제도적으론 3중 벽에 싸여 불가하다. 1956년의 한미원자력협정, 1975년에 가입한 핵확산금지조약, 그리고 1991년의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이다.

우리가 가진 것은 무엇인가? 우선 미국이 공언하는 핵우산이다. 1976년 협약은 한반도를 핵으로부터 지켜준다는 것이다. 미국은 한반도 내 핵미사일의 탐지와 요격을 사실상 총괄한다. 싸드도 남한의 2/3를 방어한다. 핵에 반격할 폭격기 B-1B가 날씨가 나쁘면 괌에서 뜨지 못한다는 허점도 있긴 하다.

다음은 한국형 3축의 자체방어체계다. 북한의 미사일 기지를 부수고(Kill Chain), 날아오는 미사일을 격추하고(KAMD), 전쟁지휘부를 궤멸한다(KPMR). 이 시스템은 충실한 준비단계지만 앞으로의 검증과제가 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북의 핵폐기지만 난망하다.

차선은 핵미사일을 쏘지 않게 억지(Deterrence)하는 것이다. 1991년에 남한에서 철수한 미국 전술핵을 다시 배치하자는 논리다. 즉시 반격할 것이라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을 통해서다.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는 지난 주 '서울과 도쿄에 가상 핵공격-인명 피해'라는 보고서를 냈다.

북한이 개발한 것으로 보이는 250kt 탄두 하나면 인천을 포함한 수도권 사망자가 78만명, 부상자가 278만명에 이른다는 시뮬레이션의 결과다. 가장 긴 접경도시 인천은 더 불안하다. 안심시킬 정부의 역할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