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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원의 사람냄새] 블랙리스트에 얽힌 역사    

2017년 10월 10일 00:05 화요일
블랙리스트(Blacklist)란 '부정적 인물의 이름이 담겨 있는 목록'을 뜻한다. 다른 말로 살생부(殺生簿)라고 할 수 있는데, 고대 로마 시대부터 존재했다고 하니 그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하지만 이 명부가 실제로 블랙리스트란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660년의 일이었다.

스튜어트 왕가의 두 번째 왕이었던 찰스 1세는 왕권신수설을 고수한 전제군주였다. 그는 신교도가 주를 이루는 의회와 여러 차례 마찰을 빚은 끝에 내전 상태(청교도혁명)를 자초했고, 1649년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아버지의 목이 잘리자 아들은 정적(政敵) 58명의 이름을 블랙리스트에 담아 복수를 꿈꿨다. 그 아들이 훗날 왕위에 오른 찰스 2세였다. 강압적 통치를 일삼던 올리버 크롬웰이 죽자 영국에서는 다시 왕정복고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찰스 2세는 이때를 노려 1660년 4월, "대역죄의 대폭 사면, 몰수된 토지의 원상회복, 종교적 관용 정책, 군대의 체불임금 지급, 국왕이 임명하는 소규모의 군대만을 운용한다"는 내용의 브레다 선언을 제시하여 민심을 얻었다. 그러나 왕으로 즉위한 찰스 2세는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이들 중 13명을 사형에 처했고, 25명에게 무기 징역을, 그 외 50명을 처벌했다. 보기에 따라 찰스 2세의 이런 행위가 과한 보복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는 부왕의 복수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나머지 세력과는 타협과 상생을 통해 국정을 원활하게 운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비록 역사에 크게 이름을 남긴 성군은 아니었지만, 그 덕분에 폭군으로 기록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형만한 아우 없다'고, 후사를 남기지 못한 형을 대신해 왕위에 오른 동생 제임스 2세는 그렇지 않았다. 부왕을 존경했던 그는 왕위를 계승한 직후 종교적 관용령을 철폐하고, 또 다시 강력한 전제군주가 되려는 꿈을 꿨다. 즉위 직후부터 갈등을 빚었던 제임스 2세는 권좌에 오른 지 3년10개월만인 1688년 12월11일, 명예혁명을 통해 공식 폐위되었다. 그의 목이 잘리지 않은 까닭은 아버지에 이어 아들마저 목을 자를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제임스 2세의 무리한 욕심 때문에 영국은 세계 최초의 입헌군주제 국가가 되었다.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아버지의 길을 그대로 따르려 했던 무모한 행보의 결과였다.
/황해문화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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