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속에서 재탄생한 흙의 매력, 이젠 만져보시라"
▲ 지난 8월 한국도자재단 신임 대표이사로 취임한 서정걸 대표가 한국도자재단의 비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1~6회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총괄
도예 하고파 떠났다 3년만에 복귀

행사 규모 커졌지만 발길 줄어
직접 체험하는 4.0버전 만들 것
도예인 '항아리 형' 강박 벗어야



"세계 3대 도자기 축제로 발돋움한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에 새로운 활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도자공원에서 만난 서정걸(56) 한국도자재단 대표이사는 인터뷰 내내 부드러운 미소를 보였다. 하지만 부드러운 어조에도 기획자의 날카로움과 자신감이 느껴졌다.

한국 도자재단이 1년 6개월간의 대표이사 공백을 깨고 지난 8월 신임 대표이사를 선임했다. 서정걸 대표이사가 그 주인공이다.

도자재단은 지난 2001년 세계무대에 한국 도자기를 선보이는 제1회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를 열었다. 올해까지 7회를 이어오며 이탈리아 파엔자 비엔날레,일본 미노 비엔날레와 함께 세계 3대 도자기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서 대표는 제1회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를 기획하고 총괄한 장본인이다.

그는 제1회 이천 국제 도자기 축제에 대해 "첫 비엔날레는 당시 우리나라가 세계무대에서 미술적인 측면에 선진국이라 볼수 없던 시기라서 준비가 정말 힘들었다"며 "국제행사를 기획하며 유명 작가 등을 초청해야 하는데 다들 의구심만 가지고 선뜻 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국제무대에 한국 도자기를 선보이고 한국의 힘을 보여준 축제"라며 "이제는 작가들이 먼저 참여를 요청하는 비엔날레로 성장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2001년 산업과 국가 발전에 공로가 인정되는 자에게만 수여되는 '산업포장'을 수상했다.
국제도자기구(IAC, International Academy of Ceramics)와 엮인 일화도 소개했다.

서 대표는 "2004년에 IAC 총회를 한국에서 열었는데 당시 IAC 회장이 프로그램과 의전 등에 대해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없다'며 감동해 서로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밝혔다.

서 대표가 도자기를 처음 만난 건 독일어를 전공하던 대학교 1학년 때 친구와 도자기를 사기위해 방문한 이천의 한 요장에서였다.

당시에 그는 요장의 도자기를 보며 작은 도자기가 큰 것보다 5배는 비싼걸 보며 요장에서 질문을 던졌다. 그의 질문에 요장은 '도자기를 좋아하고 보다보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보이는 감각이 생긴다'고 답했다. 그때는 요장이 말한 감각이 그에게 생길 줄 모르고 있었다.

독일어를 전공하던 그가 미술에 뛰어들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대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서 대표는 "대학교 4학년에 부친상을 당했는데 아버지를 장지에 묻고 내려오니 인생이라는게 아무것도 아니더라"며 "그날로 취업준비를 접고 미술대학원을 가기위한 공부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에서 실용미술을 전공한 그는 중앙일보사 월간미술 기자로 미술비평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1999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큐레이터를 자리를 거쳐 2001년 세계도자기 엑스포 조직위원회에를 맡으면서 도자기 기획자의 길을 시작했다.

서 대표는 "처음에는 행사를 마치고 순수미술계로 다시 돌아가려 했었지만 비엔날레에서 외국계 도자기를 보고 우리나라 도자기를 보니 한국 도자기의 매력이 크더라"며 "결국 돌아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도자기의 매력에 대해 "도자기 하는 분들은 불 속에서 탄생된 '불의예술'에 대한 예찬을 가지고 있다"며 "흙이라고 하는 천연재료가 불 속에서 변해 도자기가 가진 천연의 색채와 아름다움이 태어난다. 물길을 칠해 나온 색감과 천연적인 색채, 빛 깊이의 느낌과 매력은 강렬하다"고 소개했다.

서 대표는 지난 2014년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1회부터 6회까지의 경기도세계도자비엔날레 총괄 디렉터를 비롯 비엔날레 행사만 9개를 진행하고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한국도자재단을 떠났다.

미술실기에 대한 오랜 꿈은 그가 도예가로 제2의 인생을 선택한 계기였다.
도자기를 구우며 도예가로 활동한 그가 본 한국도자재단은 내부에서 본 모습과는 달랐다.

그는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는 재단행사중 가장 중요한 행사인데 성장 동력을 잃고 방황하는 모습이 보였다"며 "실제 도예가들에게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도 알게 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다시 도자재단으로 돌아온 그는 이전보다 한결 단단해졌다.
서 대표는 임기 내 최우선으로 이루고 싶은 과제로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의 재발견을 꼽았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가 세계 3대 도자비엔날레가 됐고 한국 도자기의 세계적 위상이 높아졌지만 비엔날레를 찾는 사람은 줄어들고 있다"며 "이제는 도자비엔날레에도 4.0버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서 대표는 4차 산업혁명시대의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재발견의 키워드로 '참여'를 강조했다.

그는 "도자기를 그저 전시만하고 구경하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며 "4.0버전의 도자비엔날레는 체험하고 만져보는 방식이다. 관람객들이 아름다운 도자기에 차를 담아 마시고, 플로리스트가 아름다운 꽃을 도자기에 꼽아 놓는 등 새로운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람들의 요구도 같이 활용해야 한다. 그런측면에서 재단은 넓은 정원을 가지고 있어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도예인들의 작품활동 방향에도 변화에 대해서도 잊지 않았다.
서 대표는 "항아리 모양의 도자기가 탁자 위를 장식하는 문화가 많이 달라졌다"며 "요즘 삶과 양식에 어울리는 새로운 스타일과 기능을 가진 도자기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중래 기자 jlcomet@incheonilbo.com





서정걸 한국도자재단 대표이사 약력

-1988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학과 졸업
-1994년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
-1991~1995년
중앙일보사 출판국 월간미술기자
-1999~2000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큐레이터
-2002~2005년
세계도자기엑스포 비엔날레 운영부장
-2006~2009년 도자연구지원센터장
-2010~2011년
한국도자재단 상임이사·창조사업단장
-2011~2012년 경기도자박물관장
-2012~2013년 한국도자재단 상임이사
-2014~2015년
국립아시아 정보문화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