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옥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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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유일의 쇄빙연구선 아라온 호. 예정대로라면 추석 연휴를 전후해 모항인 인천항 내항으로 돌아온다. 70일 간의 북극 탐사연구 활동을 마치고 귀환하는 것이다.
아라온 호가 이번 북극 탐사에서 수행 중인 임무는 북극의 변화가 한반도 이상기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한다. 북극 해빙은 극지방 기후변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반도를 비롯한 중위도 지역에서 발생하는 기상이변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해빙 변화 관측이 매우 중요하다는 게 과학자들의 진단이다.
북극은 자원의 보고로 불린다. 세계 원유 매장량의 25%와 천연가스 매장량의 45%가량이 북극에 묻혀 있다는 추정이 대체적이다.

원양어업 영역이 확장되면서 북극 연안의 어획량도 매년 급증하고 있다. 앞으로 2∼3년 후면 전 세계 어획량의 37%가 북극 연안에서 확보될 것으로 보인다.
북극의 매력은 새로운 물류항로로서 이점이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지구온난화에 힘입고 있다. 또 쇄빙선 기능이 계속 진화하고 있기에 가능해졌다. 러시아를 비롯한 해양강국들은 쇄빙선이 개척한 항로를 따라 자원과 상품을 실어나르는 선박 운항 횟수를 늘려가고 있다.

러시아,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아이슬란드, 핀란드 등 북극권 8개 나라는 1996년 정부 간 협의체인 '북극이사회'를 창설해 북극 관련 정책을 조율하고 있다. 북극해는 국제법상 특정 국가가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기술력과 의지만 있다면 지구촌 어떤 국가라도 북극에 진출할 수 있다. '남극조약'에 따라 국제사회가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과 비교된다. 이에 따라 강대국들은 북극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라온 호를 운영하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가 북극다산과학기지를 세우고 북극 연구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미래를 준비하는 국가 간 치열한 '경쟁'에 가세한 것이다.
극지연구소는 지질과 해양, 빙상과 해빙, 생물, 기상, 우주 등 극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변화를 관측·연구하는 국내 유일 극지 전문 연구기관이다. 북극 다산과학기지와 남극 세종과학기지 등 남북극 과학기지 3곳과 쇄빙연구선 아라온 호를 운영하고 있다.
해양강국을 추구하는 대한민국의 극지분야 산실로 키워야 할 가치가 차고도 넘친다. 국가전략적 차원에서 집중 육성하는 '선택과 집중' 원리 적용이 반드시 필요한 기관이다.
하지만 요 근래 극지 연구·개발분야는 '인천이냐 부산이냐'는 지역 간 자존심 싸움에 매몰돼버린 경향이 있어 아쉽다.

극지연구의 저변을 넓히고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발의된 극지활동진흥법이 당초 취지와 달리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대폭 수정돼버렸다. 부산지역 해양항만업계와 언론은 당초 이 법안이 인천에 있는 극지연구소에 극지 관련 업무를 독점적으로 몰아주는 일감 몰아주기 법안이라고 시비를 걸었다.
앞서 부산시는 지난 5월 극지연구소를 부산으로 이전해 줄 것을 정부에 공식 요청하기도 했다. 모(母)기관인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10월에 부산으로 옮겨오니 마땅히 부설 극지연구소도 부산으로 와야 한다는 논리였다. 극지연구소를 둘로 쪼개 부산에 '분원'이라도 개설해달라는 요구도 했다.
'해양수도 부산'을 추구하는 부산의 입장만 놓고 본다면 일면 타당성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주장'에 다름아니다. '해양강국 대한민국'이라는 더 큰 어젠다를 고민한다면 쉽게 꺼낼 수 없는 말이다.

극지연구소는 정부 차원의 치열한 검토 끝에 인천을 적지로 정하고 2006년 송도국제도시에 둥지를 틀었다. 인천을 중심으로 서해안 해양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지역균형 발전을 꾀하자는 의도도 담긴 결정이었다. 부지 무상제공 등 인천시의 전폭적인 협조 아래 송도국제도시에 신청사를 지었고 지금은 제2쇄빙연구선 건조도 추진 중이다.

부산시는 앞서 언급한 북극 항로 개발에 있어 인천보다 훨씬 적극적이다. 지난해부터 '북극 비전 국제 콘퍼런스'를 대대적으로 개최하는 등 북극 이슈 선점에 사활을 걸고 있다. 북극 항로를 통해 러시아·유럽 쪽 물류 선진화를 도모할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는 것이다.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그렇다고 하여 북극 관련 모든 이슈를 부산이 독점해야 한다는 논리적 근거는 성립하기 어렵다. 북극 항로를 새로운 물류항로로 개발·활용하는 것은 부산뿐 아니라 인천, 평택·당진항, 여수·광양항, 울산항 등 국내 거점항만이 서로 역할을 분담하고 장점을 이식시킬 때 비로소 더 큰 시너지를 얻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뭐니뭐니 해도 극지분야에 대한 인천의 올바른 자각과 재인식이 절실하다. 시민들이 극지의 중요성을 제대로 알 수 있도록 일깨워야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인천시와 유관기관, 항만업계, 시민단체, 지역언론이 함께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