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호 인천애호가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인천은 바다와 근사한 카페가 있는 월미도를 종종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현대 유니콘스 이전에 태평양 돌핀스를 제외하곤 야구가 그다지 신통치 않았지만 박현식, 임호균, 김경기, 최계훈, 김진우 등을 배출한 야구 명문 고등학교가 여럿 자리를 잡고 있는 도시였다.
그래서 인천을 떠올리다 보면 동해보다는 조금 시시한 바다와 야구(김트리오의 '연안부두'가 흘러나오던 도원구장 포함)가 기억나는 게 전부였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아무런 정보 없는 서울 사람들이 '부산'을 떠올리면 해운대나 알고 있듯 그저 월미도나 둘러보고 오는 시간을 거쳤다. 아울러 인천을 배경으로 한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와 '파이란'을 통해 북성동과 자유공원의 풍경들이 제법 헛헛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다가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 열렸던 2008년 여름, 같은 사무실의 밴드가 출연하게 되어 잠시 들렀던 파라다이스 호텔(현재는 올림포스 호텔)에서 바라본 항구의 풍경이 꽤 강하게 들어왔다. 다른 바닷가에서 봤던 풍경과는 달리 항구와 함께 보이는 풍경은 참 생소하기도 했다. 아직도 그 당시 처음 접하게 된 인천항의 풍경은 마음 한편에 오롯이 남아 있다.

여름이 지나고 계절이 가을로 바뀌었을 무렵, 인천을 다시 찾게 되었다. 신흥동을 거쳐 신포동 방향으로 오다 보니 고풍스러운 건물이 한 눈에 들어왔다. 중동우체국이란 간판을 달고 있었다. 이 우체국 건물은 길 건너 등대 경양식과 함께 신포동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해주는 촉매 구실을 했다.

자유공원에서 바라본 인천항은 파라다이스 호텔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훨씬 더 넓게 볼 수 있었다. 지금은 공사를 해서 없어졌지만 광장 한편에 나란히 있던 매점과 전자오락실에서 나던 소리의 풍경은 깊은 밤일수록 멀리 보이는 항구의 모습과 함께 어우러져 내겐 더욱더 을씨년스러웠다.
수많은 사연을 품었을 역사 깊은 술집들과 버려진 가게들과 낡은 주택들, 그리고 예전 영화를 뒤로 한 채 이제는 수명이 다한 듯한 가게와 신포동 골목 대부분의 느낌은 한 마디로는 설명이 잘 되지 않는 쓸쓸한 느낌들이었다. 지금도 고스란히 예전의 풍경을 가지고 있는 서울 몇몇 동네의 골목과는 비슷하지만 묘하게 다른 분위기가 생소함을 안겨 주었다.

이 동네의 쓸쓸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집에 돌아오면 밤새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게 되었다. 차이나타운을 비롯한 신포동 골목골목마다 많은 사연, 존재감 없이 우두커니 서 있던 건물들, 중구·동구의 골목 사진들과 손장원 교수의 근대건축물에 관한 책, 개항장의 많은 이야기를 담은 책들을 접하면 접할수록 흥미로워서 인천이란 도시는 내게 끊임없는 호기심을 던져주는 도시였다.

가을을 보내고 초겨울이 찾아왔을 즈음, 내 상황은 여러모로 좋지 않아 불면증까지 생기면서 마음고생을 꽤 했던 시기였다. 불면의 밤이 거듭될수록 신포동의 그 쓸쓸한 골목들을 떠올리다가 이내 불안정한 수면을 포기하고 차를 몰고 50여 ㎞를 달려서 이른 새벽의 신포동 거리를 걸으며 헤매고 다니게 되었다.

이곳의 골목들이 제법 익숙해졌을 무렵, 초겨울에 찾아간 북성포구의 첫 인상은 쓸쓸함보다 더 외로운 풍경이었다. 선착장 바로 맞은편 가구공장과 포구 초입에 위치한 대한제분 공장에서 들리는 지속적인 낮은 소음, 공장 굴뚝에서 쉼 없이 나오는 연기는 마치 내 탄식과도 같아 보여 더없이 애처로워 보였다.

늦은 밤 이곳을 찾을 때면 영업이 끝난 선술집 같은 횟집의 난간에 기대앉아 몇 시간이고 북성포구의 밤 풍경에 빠져들곤 했었다. 깊은 절망감에 빠져 불안정했던 시기에 북성포구는 더없이 황량한 모습으로 겨우내 나를 보듬어 주었다.

그 겨울 동안 북성포구는 물론 자유공원 일대 골목들과 만석동 동일방직 앞에서부터 내 방황은 비롯되었다. 

만석부두와 화수부두로 향하는 거리, 몇 년 전부터 안타깝게도 영업을 하지 않는 송림동의 부평옥 해장국, 역시 지금은 없어진 송현시장 부근에서 곱디고운 할머니가 운영하셨던 민서네 튀김집, 그리고 도원역 뒤 전도관까지 올라가는 도중에 만났던 아주 좁은 골목들, 신흥동의 허름한 주점들,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실내 포장마차와 골목의 보일러 연통에서 밤새 내뿜는 하얀 연기마저 포근하게 느껴지던 그 동네를 걷고 또 걸었다.

걷지를 않았으면 그 시절을 어떻게 버텼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중구와 동구의 골목들은 무심한 듯 다정하게 나와 함께 해주었다. 아니 내가 늘 그곳에 머무르고자 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듯하다. 

왠지 이 골목들도 지금의 나처럼 고독하고 혹독하지 않을까란 궁색한 동질감을 부여하곤 했다. 그렇게 인천에서 방황의 나날을 보낸 적이 있다.

지금도 종종 쉬는 날에 시간이 되면 중구와 동구의 골목들과 거리를 걸어 다닌다. 

몇 해 전 경인방송 안병진 PD가 선물해준 인천시에서 발간한 '골목, 살아지다'를 읽으며 무심히 지나쳤던 골목들의 사연들을 알고 나서 후에 다시 찾아간 그 골목을 음미해 보는 소소한 재미까지 생겼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골목과 거리….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인천의 모든 곳들이 안부도 없이 사라지기 전에 허름한 시장들과 골목과 거리를 부지런히 다녀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