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주간
내가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이원수(李元壽), 정지용(鄭芝溶) 두 시인이 '고향의 봄'과 '향수'를 노래할 때 그들은 고향에 없었다. 그저 어려서 동네 아이들과 뛰놀며 지내던 고향이 그립고 또 그리워 읊었을 터이다. 맞다. 고향은 그리움의 대상이다. 하늘 아래 몸을 부대끼며 사는 데가 다 고향이란 말이 있지만, 사람들의 정서는 그렇지 않다. 명절마다 고향으로 향하는 행렬만 봐도 '마음의 고향'은 그저 남의 얘기일 뿐이다.

많은 이가 고향을 떠나 산다. 이른바 객지 생활이다. 인천에서 삶의 터전을 가꾸며 사는 이들도 대개 타지에서, 즉 고향을 버리고 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연은 제각각이다. 직업을 찾아서, 직장 발령으로 인해 등 먹고살기 위한 방편으로 인천을 선택한 이가 대부분이다. 저 멀리 1883년 일제에 의한 '강제개항'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한적한 시골이었던 인천에 사람들이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전국에서 구름처럼 모였다고 한다. 그만큼 당시 해외 근대문물을 국내 처음으로 받아들였던 인천에는 일자리가 수두룩했다. 각종 물산도 풍부했다. 비록 일제가 만들어 놓은 '계획도시'이긴 했지만, 여기저기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들이 일군 곳이 인천이다. 그 시절, 그러니까 일제 강점기를 거쳐 1950년 6·25 전쟁 전까지만 해도 인천은 꽤 아름다운 곳이었다고 기록들은 전한다.

여기서 우리가 상기(想起)해야 할 게 하나 있다. 바로 인천상륙작전이다. 얼마 있으면(9월15일) 인천상륙작전 67주년 기념일을 맞는다. 대개 사람들은 6·25전쟁의 전세를 확 바꾸어 놓은 인천상륙작전만 기억한다. 세계 전사(戰史)에 빛나는 작전임에는 두 말할 나위 없다. 그래서 인천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선 이날을 기념해 여러가지 행사를 벌이곤 한다. 국내 첫 서구식 공원이며 만국공원으로 칭하던 곳은 1957년 맥아더 장군 동상이 세워지면서 여태까지 자유공원으로 불린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해 인천이 초토화한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인천상륙작전 전에 번창했던 지금의 중구와 동구 지역은 완전히 무너졌다. 쏟아지는 폭격으로 인해 인천은 그야말로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성한 시설이 거의 없을 만큼 붕괴됐다. 남아서 이름을 날렸던 역사성과 장소성을 하루 아침에 모두 잃어버린 것이다. 전국에 걸쳐 전쟁의 참화가 미치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랴마는, 인천이 겪은 참담한 사실을 다시 한 번 짚어보자는 얘기다.

그런 폐허를 딛고 다시 일어선 곳이 인천이다. 일제 식민지를 거쳐 6·25전쟁 이후에도 전국의 사람들은 인천에 몰려들었다. 자기 고향을 떠난 외지인이 인천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토박이라고 하면 조상대대로 한 군데에서 삶을 지탱해온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런 의미에서 인천에 토박이라고 부를 만한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면 인천은 어떠한 도시인가. 앞서 언급했듯 수많은 외지인이 세운 곳이다. 미국 이민사(移民史)처럼 가히 멜팅 팟(Melting Pot)이라고 부를 만하다. 용광로에서 쇳물을 녹여내듯 여러 민족이 모여 하나를 이룬다는 뜻이다. 그렇다. 인천은 타지 사람들을 배척하지 않고 포용을 하는 도시다. 지역 특성상 그러지 않고선 배겨나기도 어렵다. '따로 또 같이'의 문화가 존재한다. 그것이 '인천의 정신'이기도 하다.

인천은 엊그제 인구 300만의 시대를 맞았다. 서울과 부산 다음으로 많은 인구를 자랑한다. 물론 인구가 많다고 해서 살기 좋고 행복한 도시라고는 할 수 없다. 300만 인구에 걸맞은 정책이 절실하다.
개항 이후부터 다양한 외지인이 인천을 만들었듯, 다른 지방에서처럼 '배타적'이지 않았으면 싶다. 타 지역 사람에게도 배려와 친절 등 포용심을 발휘해야 옳다. 하나 꽤 오래 전부터 인천에서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끼리 끼리' 행태들이 나타나 안타깝다. 갖가지 선거를 봐도 그렇고, 인사(人事) 정책도 그렇고, 매사에 배타성을 띠는 것 같아 아쉽다. 고향과 경력 등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지 않는다면 지역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인천 앞바다가 흙탕물이든 깨끗한 물이든 모든 물을 마다하지 않듯, 인천에서 삶을 꾸려가는 이들은 모두 진정한 '인천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너그러움이 가장 큰 인천의 미덕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