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소재 정안옹주·심안의 분묘 … 6월 종중 동의 없이 개장 '행방 묘연'
오남읍사무소 '부실 신청서류' 승인 … 종중 "잘못된 행정 … 법적 대응 준비"
▲ 남양주시 오남읍의 한 야산에 묻힌 세종대왕의 사위 심안의(沈安義)와 딸 정안옹주(貞安翁主)의 분묘가 개장된 현장. 뽑힌 석물(사진 위에서부터 반시계 방향), 개장되는 현장, 개장되기 이전 모습. /사진제공=심씨 종중
세종대왕의 사위 심안의(부마·沈安義)와 딸 정안옹주(이정안·貞安翁主)가 묻힌 남양주시 오남읍에 있던 550여년 된 분묘(墳墓) 2기의 행방이 묘연하면서 청송(靑松) 심(沈)씨 종중이 발칵 뒤집혔다.

종중은 분묘 2기의 남양주시 향토문화재 지정을 추진 중인 가운데, 시가 분묘개장 신고자의 말만 믿고 이를 받아 줘 법적 분쟁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23일 청송 심씨 청성위파종회와 남양주시 등에 따르면 오남읍 양지리에 있던 세종대왕의 사위와 딸의 분묘 2기가 지난 6월30일 새벽 5시쯤 개장됐다.

개장 전 위에는 정안옹주, 아래에는 심안의 분묘가 세로 방향으로 있었다. 심안의 분묘 앞에는 2m가 넘는 대형 석물 4기가 사방에 있었다.

주민들의 연락으로 현장에 도착한 종중 총무(심안의 17대손)는 개장을 위임 받았다는 한 개발업체에 의해 가로막혀 조상 묘가 파헤쳐지는 것을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총무는 현장에서 오남읍과 경찰에 신고해 조상 묘를 종중 동의 없이 개장하는 것을 막아달라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개장을 막지는 못했다.

총무는 개장된 분묘의 행방 등을 쫓기 위해 개장을 신청한 사람의 인적사항 등을 알려달라며 오남읍사무소를 찾았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결국 총무는 행정정보 공개를 신청했고, 40여일 만인 지난 14일 부분 공개결정을 받아 냈지만 개장신고를 한 사람의 인적사항은 파악하지 못했다.

오남읍사무소가 개장신고 서류와 사진을 공개하라는 결정에도 신고자의 이름, 연락처 등을 모두 지운 신고증명서만 내줬기 때문이다.

총무는 분묘 조상들의 직계손인 본인들도 모르는 분묘개장을 오남읍사무소가 받아 준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오남읍사무소에 지난 2월24일 접수된 개장신청서에는 반드시 첨부돼야 할 정안옹주 분묘의 사진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는 분묘 사진과 함께 고인의 제적등본 또는 족보 등의 서류를 내야 한다.

또 함께 제출된 심씨 족보를 보면 심안의 직계 자손들이 나오는 것이 아닌, 심안의 형인 안인(安仁)의 자손이 나오는 족보가 첨부돼 있다.

종중 총무는 "문화재 지정 추진과정에서 오남읍의 꼼꼼하지 않은 행정으로 시조의 분묘가 도굴된 것 같은 상황이다. 종중에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절망감을 느끼고 있다"며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오남읍 관계자는 "신청인이 심안의 자손이 끊겼다는 말과 심안의 분묘에 정안옹주가 합장돼 있다는 말을 믿었다"며 "사진이 첨부되지 않은 것은 현장을 찾아 먼발치에서 육안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분묘 개장신청의 우선순위는 없지만 직계손이 6월30일 개장 당일 문제 제기를 한 것을 확인하고 경찰과 함께 막으려고 현장을 찾았지만 막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경기도 관계자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연고가 있는 분묘의 경우 직계손 등 우선순위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안옹주(1438~1461)는 세종대왕의 다섯째 부인 숙빈 이씨(淑嬪 李氏)의 딸이다. 사위 심안의(1438~1476)는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경기관찰사를 지낸 심선(沈璿)의 둘째 아들로 순의청성위(順義靑城尉)에 봉해졌다.

1453년 부부의 연을 맺은 정안옹주와 심안의는 슬하에 1남1녀를 두었다. 당시 단종은 면포 600필로 집을 사서 하사했다.

정안옹주가 23세 되던 1461년 10월16일 이른 나이에 사망하자, 세조는 사흘간 조회를 정지하면서까지 옹주를 애도했다. 세조는 쌀과 콩 100석, 종이 200권, 백저포·면포 각 10필, 베 60필을 부조했다.

/장학인·정재석 기자 fugoo@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