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풍파 막아낼 '대한민국 크리켓' 지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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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크리켓협회 회장 출신으로 지난 13일 대한크리켓협회 회장으로 당선된 김남기 신임 회장.
"2014인천아시아경기대회를 계기로 인천에서 뿌리내리기 시작해 이제 걸음마 단계에 있는 대한민국 크리켓이 제대로 서기도 전에 정말 큰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크리켓이 201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에서 탈락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되면서 대한민국 크리켓의 운명도 바람 앞 촛불의 신세와 같아졌어요."

"하지만 인천크리켓협회 회장을 거쳐 대한크리켓협회 회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만큼 이 위기를 잘 극복해 '크리켓의 메카 인천'의 명성을 더욱 드높이고, 대한민국에 크리켓이 뿌리내리도록 온 힘을 쏟겠습니다."

▲크리켓, AG 정식 종목에서 퇴출 위기
인천크리켓협회 회장 출신으로 지난 13일 대한크리켓협회 회장으로 뽑힌 김남기(52) 신임 회장은 "앞에 놓여있는 산적한 현안과 풀어야 할 과제 때문에 당선의 기쁨을 누릴 여유도 없다. 속상하지만 헤쳐나갈 수 밖에 없다"고 운을 뗐다.

그가 당선 이후 언론과의 첫 인터뷰에서 이처럼 비장한 말을 한 이유는 크리켓이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에서 퇴출될 가능성이 높아졌고, 그 여파로 대한크리켓협회 역시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는 지난 4월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와 논의 끝에 2018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서 크리켓을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인도네시아 조직위원회가 비용절감을 위해 대회 규모를 축소하는 과정에서 크리켓이 직격탄을 맞은 것.

이에 대한체육회가 5월 초 회장 명의로 OCA에 크리켓 정식 종목 제외 방침에 우려를 표하는 편지를 발송하고 우리나라 국회의원 13명이 인도네시아에 청원서를 제출하는 등 OCA 결정을 뒤집고자 그동안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OCA는 오는 9월19~20일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열리는 OCA 집행위원회와 총회에서 이 문제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협회, 준회원 자격 위태 … 선수들 동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한크리켓협회는 제도적 문제 때문에 대한체육회 준회원 자격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대한체육회는 오는 28일 이사회를 열어 가입종목단체에 대한 등급심사를 진행한다.

여기서 회원이나 준회원 단체 자격을 얻지 못해 유보단체가 되면 재정 지원에 제한을 받는다.

대한체육회 정회원은 시·도시부 12곳, 준회원은 시·도지부가 9곳 이상 설치되어야 자격이 있다.

그렇지만 대한크리켓협회는 그동안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란 이유로 전국에 시·도지부가 1곳(인천)뿐임에도 준회원 자격을 인정받아왔다.

그런데 이날 대한체육회 이사회에서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 탈락이 유력하다'란 이유로 대한크리켓협회의 준회원 자격을 박탈하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생소한 종목을 개척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내년 자카르타 대회를 목표로 훈련 중이던 대한민국 크리켓 대표팀은 비상이 걸렸다.

열악한 국내 환경에서 그나마 아시안게임 종목이라 대한체육회의 지원을 받아 훈련을 할 수 있었는 데 이제 그마저도 불가능해 질수 있는 상황이라 이들은 '이대로 팀이 공중분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최종 결정 전까지 준회원 자격 유효"
이에 김남기 신임 회장은 두 가지 근거를 들며 28일로 예정된 대한체육회 이사회에 당부의 말을 했다.

그는 첫째 "대한체육회 이사회가 OCA 최종 결정 전에 등급심사를 진행해 결론을 내리는 것은 부당하다. 더욱이 실제 탈락 결정이 아닌, 단지 '탈락 가능성이 크다'다는 이유로 대한크리켓협회에 대한 등급을 결정한다면 더욱 큰 문제다. 결론적으로 9월20일 정식으로 OCA 집행위원회와 총회에서 최종 결정이 나기 전까지 대한크리켓협회 준회원 자격은 유효한 것으로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울러 "대한크리켓협회는 대한체육회가 요구하는 준회원 자격(시·도지부 9곳 이상 설치)을 갖출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이같은 대한체육회 가입·탈퇴 규정이 지난 7일 개정되면서 이 업무를 실제 수행해야 할 전국 시·도 체육회 규정까지는 아직 바뀌지 않았다.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린 준회원 자격을 갖추고자 9개 시·도지부 구성 준비를 마쳤는데, 시도체육회가 규정을 바꾸는 데 시간이 걸려 지부 구성을 못하고 있는 상황을 반드시 고려해서 등급심사를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야구/소프트볼과 협력, 정식종목 유지"
김남기 회장은 이처럼 당면한 위기상황을 극복하려는 노력과 함께 크리켓의 불안한 미래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려면, 야구 및 소프트볼과의 협력이 절실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크리켓이 야구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종목인 만큼 유사성이 있는데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야구나 소프트볼 역시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서 '붙박이' 정식 종목이 아니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점을 노린 것.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위상이 불안한 세 종목이 함께 협력해 생존을 도모하자는 해법이다.

그는 "야구와 소프트볼, 크리켓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 정식종목에 영구적으로 편입되도록 하고 각각을 세부종목으로 나눠 경기를 치르면 서로 상생할 수 있다. 앞으로 국회는 물론 한일의원연맹 등을 통해 이러한 문제의식을 확산시켜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아울러 차기 대회(도쿄올림픽→항저우AG→파리올림픽→나고야AG→LA올림픽) 개최지 중 하나인 2024년 파리올림픽에 크리켓이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그의 이런 판단에 한몫했다. 실제 로라 플레셀 프랑스 체육부장관은 최근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크리켓을 올림픽 종목에 추가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로라 장관은 1900년도 파리올림픽에서 영국이 크리켓 종목에서 프랑스를 이기고 금메달을 딴 것을 상기시키며 "인도, 파키스탄 등에서 인기가 높고 최근 프랑스에서도 급성장하고 있는 크리켓을 올림픽 종목에 포함시키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크리켓은 세계에 약 25억명의 팬을 거느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남기 회장은 "2014인천아시아경기대회를 준비하면서 크리켓을 만났다. 그동안 네팔에 가서 심판자격증도 따고 외국서적을 보며 꾸준히 공부하면서 인천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에 크리켓을 뿌리내리려고 무척 노력했다. 그런데 아직 걷기도 전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힘 내서 크리켓에 대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항구적인 시스템과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글·사진 이종만 기자 male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