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각산
삼각산은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세 봉우리가 뿔처럼 높이 솟아있다고 해 붙여진 이름으로, 명승 제10호이자 북한산의 중심 산봉이다. 이중 백운대가 해발 836m로 가장 높다.

만경대는 삼라만상의 온갖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는 뜻이다.

조선 초 무학대사가 태조의 명을 받고 이 봉에 올라 나라를 다스릴 도읍터를 정했다고 해 국망봉이라고도 부른다.

삼각산에는 많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고구려 건국의 1등 공신이자 주몽의 2번째 부인인 과부 소서노가 황후와 태자 자리를 빼앗기고, 살 곳을 찾기 위해 오른 부아악이 바로 삼각산이라는 것이다.

이후 소서노의 둘째 아들 온조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백제를 세운다.
또 삼각산은 문학에서 나라의 상징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병자호란 당시 항복 국서를 찢어버린 척화론자 김상헌은 청으로 압송되면서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 고국산천을 떠나려 하랴마는 /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며 애끓는 심정을 노래했다.

심훈 시인은 그의 저항시 '그날이 오면'에서 "그날이 오면 삼각산은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시인 자신은 두개골이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더라도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린다"고 했다.

하지만 시인은 조국이 해방되는 그날을 보지 못하고 36세 불꽃같은 삶을 마감했다.

이외에도 삼각산에는 1968년 청와대를 기습한 김신조 일행이 숨어 있었다고 하는 김신조 바위(바위 모습이 조선시대 관리들이 머리에 쓰던 사모와 닮았다고 해 사모바위라고도 한다), 바위를 타고 앉아 아들 낳기를 기원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문수봉 두꺼비바위 등이 있다.

산과 인생은 닮아있다. 오르는 길이 있으면 내려오는 길도 있다.

아름다운 꽃도 진귀한 것들도 많지만 대부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 힘들게 오르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내려놓으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올라갈 땐 보지 못한 그 꽃들을.

/김진효 문화유산관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