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민 정치부 기자

1980년 5월, 독일인 기자는 택시를 타고 광주 시내를 누볐다. 군홧발과 총칼, 쓰러져가는 시민은 그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광주만 알고, 한국은 몰랐던 그때의 참상이 세계에 알려졌다.

영화 '택시운전사'가 20일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독일 기자인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태워줬던 택시기사를 다룬 이야기다. 두 사람은 참혹했던 현장을 지켜봤고, 거리의 시민과 함께 움직였다.

당시 광주에서 택시는 대중교통에 머무르지 않았다. 부상자를 실어날랐고, 쫓겨 다니던 시민을 도왔다. 수백대가 경적을 울리며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택시운전사 또한 '보통 사람' 그 자체였다.

2017년 8월, 인천시가 택시운전사를 주목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시는 택시운전사들을 시정 홍보에 동원하기로 했다. 다음달 6일에는 개인·법인 기사 100명을 불러 발대식까지 연다.

홍보단이라는 '훈장'을 달아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1만4000여 명 전체 기사에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해 홍보물도 돌린다. 시가 작성한 자료에는 '승객 대상 인천 바로 알리기, 여론 청취'라는 계획이 담겨 있다.

택시 홍보단은 내년 6월 지방선거 직후까지 운영된다. 시정을 알리고, 시민 여론을 듣는다는 의도가 순수해 보이지 않는 이유다. 취재 과정에서 인천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관계자는 "선거를 앞둔 시기상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걸 안다"면서도 "정치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인천택시운송사업조합 관계자도 "선거법에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참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보통 사람'으로서의 택시운전사는 뒷전이다. 인천에서 교대 없이 혼자 택시를 운행하는 이른바 '하루차'는 절반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납금에 시달리고, 승객을 찾느라 거리를 헤매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택시를 '시민의 발'이 아닌 '시민의 입'으로 여기는 시는 최근 들어 실·국별로 앞다퉈 홍보 계획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3월 간부회의에서 유정복 시장이 "시정을 알리는 기능을 강화하는 방법을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말한 다음부터다. 얼마 전 만난 택시 운전자는 홍보단 얘길 꺼내자 "도대체 뭘 홍보해 달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