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 명예교수
가뭄과 가난, 그리고 보릿고개가 숙명인 나라가 6·25 전쟁으로 회복 불능의 폐허로 변했었다. 그러나 '다시 건국한다'는 정신 아래 호국과 전후 복구에 전념하는 한편 북한과의 경제발전 경쟁, 이념 전쟁, 정통성·체제 경쟁에서 절대적 우위를 확보했다. 그 기초 위에 산업화, 경제발전, 빈곤탈출, 한강의 기적이란 호칭과 함께 세계의 주목을 받는 나라로 우뚝 섰다. 이 놀라운 한국의 발전에 대해 피터 드러커 교수는 "…프랑스와 영국이 거의 200여 년, 독일과 미국이 70~125년, 일본이 75~100년에 걸쳐 이루어낸 것을 한국은 25~30년 만에 달성하였다.

세계 최빈국이었던 나라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제 강국이 되었고, 세계가 선망하는 나라, 경제 발전의 우등생 국가로 발전하였다. 매우 놀랍고 실로 대단한 성과다."라고 극찬했다. 더욱이 정치 민주화까지 이루게 된 것은 비전을 갖춘 탁월한 리더십과 전 국민의 피땀어린 노력, 그리고 언론의 공헌도 매우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간 간헐적으로 언론에 대한 비판이 있어 왔지만, 수년전 월스트리트저널의 에반 람스타드(Evan Ramstad) 서울지국장의 '외신기자가 보는 이상한 한국 언론'(2011. 9. 16)이란 글은 우리 언론의 문제점을 정확히 진단했다는 점에서 주목됐다. 첫째, 한국의 언론은 원인 분석이 없다는 점이다. 어떤 현상(사건)의 원인과 과정을 파고들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중요한데 정치권과 네티즌의 반응만 연속 보도한다는 지적이다. 둘째, 기자들이 인기 영합주의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TV가 시청률에 매달려 작품 같지도 않은 프로, 드라마가 막장으로 치닫고 있듯이 영화와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로 깜도 안 되는 것들이 큰소리친다고 했다. 이는 광우병 파동,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연평도 포격, 천안함 폭침 사태의 보도에서 우리가 실감했던 것들이다. 특히 세월호 참사 보도에서 '무차별 속도 취재 경쟁, 오보만 쏟아냈다', '언론, 유언비어 퍼뜨리는 장본인, 한심한 언론'(시사저널, 2014. 4. 22~29).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괴담 진원지'(경향신문, 2014. 5. 13). '기자를 싫어하는 네 가지 이유'(한겨레 21, 2014. 5. 26)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언론과 기자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극한점에 다다랐다. 더욱이 지난 탄핵정국에서 주요 언론과 종편방송의 보도양태는 언론 전체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임계점에 도달한 느낌이었다. 이젠 사람들을 만나면 "아직도 신문·방송을 보세요?" "어떤 신문을 보십니까?"라고 묻는 것 자체도 사라졌다. 그것은 어떤 신문을 보는지, 신문을 안 보거나 끊었는지를 통해 그의 정치적 색깔, 이념적 성향, 출신 지역, 세대, 학력, 경제적 배경, 성장과정, 취향까지도 가늠하게 되었기 때문인데 그게 불필요한 현실이 되었다는 점이다.

미국도 한 동안 '미국을 이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뉴욕타임스를 보고, '미국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워싱턴포스트를 읽으며, '미국을 실제로 이끄는 사람들'이 월스트리트저널을 본다는 말이 있다. 즉 모두 색깔이 있으므로 다 봐야 균형 감각이 생긴다는 말이다. 지금 미국의 언론은 CBS, ABC, CNN, NBC와 케이블 뉴스 채널인 MSNBC가 민주당 성향의 진보·좌파 언론이다. 여기에 활자 매체인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타임, 뉴스위크 등도 '진보'를 자처한다. 보수 성향의 언론은 기껏해야 폭스TV와 월스트리트저널 정도로 이해된다. 이렇듯 주류 언론의 80% 이상을 진보진영이 장악하고 있다 보니 지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민주당과 좌파 언론이라는 두 적(敵)과 싸운다"(고두현, 2016)는 지적에 공감했고, 그들의 보도를 대부분 인용했으니 우리가 트럼프 당선에 의아해 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영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타임스를 본다면 일단 보수당 지지에다 전통적 명문학교를 나온 관리직일 가능성이 크고, 가디언을 본다면 노동당 지지 성향의 하위계층 혹은 비판적 지식인일 가능성이 높으며, 인디펜던트를 본다면 객관적 신뢰를 중시하는 중산층일 가능성이 크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돈 많은 사람들의 필수품이다"라는 지적(이종수, 2013)이 설득력을 갖는다. 중앙지에 실망한 한국인에게 좋은 변화가 보인다. 너도 나도 "차라리 지방지를 통해 애향심 고취하고, 지방언론 키워 지역발전을 도모해 내 고장의 경쟁력을 키우자"는 얘기가 대세다. 더 이상 저급한 황색 정보는 싫다는 얘기다. 이제 국가사회의 신경조직인 언론은 그 책임과 자유에 입각하여 진실을 쫓되 취재윤리를 철저히 준수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일부 언론이 오해를 받는 문제, 즉 사실의 왜곡이나 여론 조작, 정치권력이나 특정 집단과의 결탁, 지나친 상업주의나 선정성 등 역기능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인간의 존엄과 인권도 보호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