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문화예술계에서는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이 화두다. 이전 정부 시대에 빚어진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했다.

팔길이 원칙은 '팔길이 만큼 거리를 둔다'는 것으로, '정부는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영국의 문화예술정책의 기본 이념을 말한다.

1945년 영국의 예술평의회(Arts Council)가 창설되면서 관료나 정치로부터 예술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이 원칙을 채택했다.

이 원칙의 근원을 보면 자본주의의 모국인 영국의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 철학을 반영한 것으로 문화예술분야에 국한된 원칙이 아니고 일반적인 사회운영원리로 받아들여진 원칙이다.

예술인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이 '팔길이 원칙'에 대해서는 곱씹을 부분도 많다. 과연 우리나라에 어느 정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설왕설래가 많다.

'팔길이 원칙'의 전제는 지원 기관의 자율성과 독립성뿐 아니라 지원 과정 및 결과에 대한 '책임성'을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임성이란 도의적 책임, 법적 책임은 물론 당초 목적한 바를 달성하는 효과성, 국민의 여망을 충족해야 할 의무인 대응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책임성을 충족해야 지원 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도 강화된다. 책임성을 충족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지원기관에게 무작정 자율성과 독립성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문화예술 지원정책의 현실에 대해서는 여러 우려와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혹자는 지원의 과잉이 문화예술의 자율성, 독립성, 자생력을 약화시킨다고 하고 혹자는 지원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한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를 지켜보면서 단순히 지원 기관의 자율성, 독립성을 강화하는 차원을 넘어 지원방법, 지원방향, 지원기관의 역할 및 위상 그리고 책임성을 강화하는 장치 등 문화예술 정책 전반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깊은 성찰이 필요한 때다.

/차정숙 경기도 문화정책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