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170원을 공짜로 벌었다/ 회신용 우표를 동봉하여 배달되는/ 그렇고 그런 우편물이 가끔 있는데/ 회신 안 해도 되는 것들이 많다/ 인물백과사전을 내는 출판사나/ 데이터뱅크를 차려놓고/ 시인 작가와 대학교수들의/ 자료를 수집하는 신문사나/ 여론조사를 하는 단체에서 회신용 봉투에 우표를 붙여서 보내지만/ 나는 우표만 뜯어내어/ 요긴할 때 써 먹는다/ (중략)-오탁번 시인의 시 <우표 한 장의 행복>중에서.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가 발매된단다. 500만장을 찍었는데 발매도 되기 전 온라인 주문이 폭주한다는 기사였다. 아직도 기념우표가 나온다는 걸 새삼 알았다. 나도 우표를 모으던 때가 있었다. "우표에서 얻은 지식이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더 많다"고 했던 루즈벨트 대통령의 주옥같은 말에 감동해서도 아니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한때 우표 모으는 게 유행이던 시절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모았던 우표의 일부는 아직도 내 앨범 속에서 고이 잠자고 있다.

우체국 소인이 찍힌 우표의 옆 톱니바퀴 테두리를 상하지 않은 채 뜯기 위해 편지 봉투의 일부를 같이 뜯어 물에 담가 우표만 완벽하게 분리해 내면서 이게 나중에 얼마나 비싸질까 터무니없는 상상도 했었다. 아이스크림 회사에서 콘 과자와 껍질 사이에 외국우표를 넣어 호객을 하기도 했다. 물론 나는 그 호객에 넘어가 그 콘을 열심히 사먹었다. 껍질을 벗기고 이국의 우표를 보며 인천도 벗어나보지 못했던 내가 머언 이국의 무언가를 그리워했다.

그러다 언제부터 시들해졌다. 그러다가 시인의 시처럼 회신용 우표가 생기기도 했는데 달리 쓸 데가 없었다. 군 입대한 아들에게 몇 차례 편지를 쓰느라 우표를 붙여보았고, 2002년 월드컵 기념우표를 선물로 받은 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게 전부였다고 쓰려니 가슴 한쪽이 아프다. 이 아픔이 우표가 생겨도 더 이상 요긴하게 써먹을 데가 없는, 더 이상 편지를 쓰게 되지 않은, 쓸 사람이 없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인지, 이제는 되돌아 갈 수 없는 한때의 추억이 주는 쓸쓸함인지는 잘 모르겠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