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전동 동광그룹 본사 앞에 설치된 동광기연 노동조합의 천막농성장에서는 회사의 폐업과 노동자들의 무더기 해고에 저항하는 투쟁이 7개월 째 이어지고 있다.
계양구 작전동 동광그룹 본사 건물 앞에는 천막농성장 하나가 버티고 서있다. 지난 1월 31일 세워진 이후로 벌써 7개월이 지났다. 이 농성장은 그룹의 모기업인 동광기연이 문을 닫은 뒤 들어섰다.
설 명절 직전인 1월 23일 동광기연은 공장매각과 함께 노동자 62명을 무더기로 해고했다. 노동조합은 곧바로 농성장을 세우고 법적 투쟁에 들어갔다. 노동조합은 회사매각을 사전통보하지도 않았고 고용도 보장하지 않았다는 점을 내세웠다.

"회사를 매각할 경우 70일전에 노동조합에 알린다"는 노사 간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가 팔리더라도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보장해 준다는 약속도 맺은 상태였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회사가 팔렸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회사의 기습적인 통보를 받고난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됐다.

그리곤 "더 이상 직장에 나올 필요가 없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가족과 아침식사를 마치고 출근해 보니, 갑자기 직장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회사의 주장은 "노조도 매각협상이 진행되는 것을 알고 있지 않았느냐"는 것이 전부였다. 노동자들은 전기가 끊긴 안산공장에서 일주일간을 지내다 이곳으로 옮겨와 농성장을 세웠다. 그 때부터 엄동설한과 봄날을 지나 한 여름 땡볕을 뜨거운 천막 안에서 온전히 겪어내야 했다.

● 노사 갈등의 장기화

노동조합은 지난 4월27일 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해고, 부당노동행위 판정을 받았다. 5월 19일에는 노동자의 지위 인정과 함께 매월 300만 원을 지급받을 수 있는 법원의 결정문도 얻어냈다. 하지만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회사는 지방노동위원회의 판정에 불복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다.

이후 8월 11일 중앙노동위원회 심문회의 도중 2주간의 조정기간을 갖자는 데는 합의했다. 하지만 회사는 여전히 중노위의 판정을 받아보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회사로부터 돈을 받으려는 시도도 여의치 않아 보인다. 회사 통장에 남아 있는 돈이라곤 10만 원 남짓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다음 달부터는 실업수당도 끊어진다. 노동조합은 회사 측을 배임 등의 혐의로 고발해 놓은 상태다. 부당노동행위와 임금체불에 대한 수사도 진행 중이다.

● 동광기연 사태의 배경

그런데 이 회사에는 몇 가지 눈에 띄는 점이 발견된다. 창업주부터 아들, 손자로 이어지는 소유와 경영의 세습이 그 첫 번째다. 그 과정에서 계열사 간 순환출자가 거리낌 없이 진행됐다. 일감몰아주기와 계열사 주식 고가매입 의혹도 제기된다.

동광기연에는 그룹 내 10여개 계열사 중 유일하게 노동조합이 존재한다. 직원도 전원 정규직이다. 노동조합의 힘으로 얻어낸 성과다. 나머지 계열사는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운영되고 있다. 소유와 경영을 세습하려는 회사의 입장에서는 노동조합이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동광기연 사태의 장기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여기에서 나온다.

● 동광기연의 경영세습

차량 실내 부품을 생산해 온 동광기연은 지난 1966년 동양이화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창업 이후 도어트림, 시트 같은 부품을 생산해 대우자동차 등 완성차 공장에 납품해 왔다. 그동안 창업주의 아들(현 유래형 회장)과 손자(유승훈, 유승찬)로 이어지는 경영권 승계가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동광기연은 모회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지금은 중국 등지의 해외법인을 포함해 1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동광그룹으로 발전했다.

● 건실한 재무구조와 대비되는 열악한 노사관계

동광그룹의 모기업 역할을 맡아왔던 동광기연은 건실한 재무구조를 자랑해왔다. 2014년까지 10년간 연평균 매출액 637억 원, 평균 영업이익이 15억 원에 이른다는 분석결과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하지만 그룹을 회사를 키워온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유독 야박하게 대우했다. 30년 근속한 정규직원의 연봉이 3천만~4천만 원 수준이다. 지난 2014년에는 회사가 어렵다며 남동산단에 있던 공장을 전북 익산으로 옮겼다. 이 때 따라가지 못했던 상당수의 직원들이 정든 회사를 떠나야 했다.

그러나 공장을 이전한지 1년도 되지 않은 다음해인 2015년 6월 남동산단으로 되돌아 왔다. 2015년 10월경에는 연봉의 3분의 1에 이르는 임금 반납을 요구받기도 했다. 2016년 1월에는 원인모를 화재가 발생하자, 경기도 안산으로 공장을 또다시 옮겼다. 노동자들은 한해 걸러 한번 씩 이리 저리 이전하는 공장을 따라 옮겨 다녀야 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에게 돌아온 대가는 공장의 일방적 매각과 무더기 해고 통보였다.

노동조합은 "동광기연의 직원들이 전원 정규직이라는 점과 회사의 노조혐오가 겹쳐 이번 사태가 초래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사측은 경영상 합리적 선택이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 동광기연의 이익을 빼돌려 계열사 배불리기 의혹 제기

무더기 해고 사태 직후인 지난 1월 26일 노동조합은 동광그룹 회장 일가를 검찰에 고발했다. 노동조합은 동광기연이 계열사인 인피니티의 지분을 1년 만에 23%가 오른 주당 230만원에 인수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자도 받지 않고 계열사에 막대한 자금을 대여했고, 아무런 대가없이 지급 보증해 회사의 이익을 유출시켰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동광기연은 일감이 없다며 폐업을 하면서도, 뒤로는 회사의 이익을 빼돌려 계열사의 배를 불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 씨 일가가 자식들에게 회사를 편법적으로 물려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벌인 일이라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국내외 계열사 10여 개가 모두 유 씨 일가 소유"라며 구속수사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사측은 경영세습에 대해서는 일부 인정하면서도 나머지 의혹에 대해서는 "합법적 조치"라며 전면 부인하고 있다.

● 사태 해결의 전망

국회에서는 환경노동위를 중심으로 동광그룹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이 준비되고 있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도 지난 11일 청문회에서 동광기연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거론했다.

다행이 최근 들어 노사 간 접점을 찾아가는 분위기가 조금씩 감지된다. 지난 7월 26일 유승훈 대표는 동광기연 노동자들의 고용보장 의사를 내비쳤다. 노동조합과의 대화에서 유 대표가 "국내를 포함한 중국 공장 배치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이에 대해 노동조합은 이를 내부적으로 검토하면서 회사의 구체안을 기다린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회사가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를 거두고 '상생의 자세를 갖느냐'는 본질적인 문제가 선결과제로 남아있다. 변화된 시대에 부응하는 '투명하고 윤리적인 경영'도 경영진들이 해결해야 할 숙제다. 창업 50년을 넘긴 동광그룹이 노동자들과 손을 잡고 중견기업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할 것인가의 여부는 오롯이 노사 간 선택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글·사진 정찬흥 기자 report6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