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 기념물은 숙부살던 주택
후손들 알고도 이의제기 안해
실제는 60m 거리에 폐허 방치
기념회 "LH와 '부지 보존' 합의"
평택시 고덕면 두릉리의 독립운동가 민세 안재홍(1891~1965년) 선생 생가가 잘못 지정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평택시가 확인작업을 벌이고 있다.

㈔민세안재홍선생기념사업회는 후손들의 증언을 토대로 1992년 12월31일 경기기념물 제135호로 지정된 생가(두릉리 646)는 안재홍 선생의 숙부(안태섭)가 살던주택이라고 14일 주장했다.

이 집은 안재홍 선생이 1913년 일본 와세다대학 유학 후 귀국해 살면서 일제 식민사관에 맞서 '조선상고사감' 등을 저술한 곳이지 생가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실제 생가는 이곳에서 직선거리로 60여m 떨어진 두릉리 611의 1~2로, 아버지와 숙부가 함께 살던 집이다.

현재 생가터의 본채는 없어졌고, 행랑채와 우물터만 남아있는 폐허로 변했으며 건축자재를 쌓아놓은 채 방치되고 있다.

이 동네에 사는 후손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하지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념사업회는 2016년 중순께 고덕국제신도시 택지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이런 사실을 알려 생가터 보존을 최종 결론지었으며, 오는 10월26일에는 평택시 등의 후원으로 문화재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고덕국제신도시 민세 안재홍 실재 생가의 문화재 지정 필요성과 활용방안' 학술대회를 계획하고 있다.

황우갑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LH가 새로 밝혀진 생가터와 현 생가(숙부 주택)를 모두 존치하기로 결정했다"며 "학술대회에 이어 문화재 조사와 지정을 서두르겠다"고 말했다.

평택시청 차상돈 문예관광과장은 "민세 생가가 잘못 지정됐다는 말은 나돌았지만, 기념사업회 측에서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본격적인 검증절차가 이뤄지지 않았었다"며 "이번 기회에서 역사학자의 검증절차와 후손들의 진술 등을 통해 생가 문제를 확실히 마무리 짓겠다"고 밝혔다.

안재홍은 일본 유학 시절 학우회를 조직해 독립운동에 가담했고, 귀국 후 조선일보 주필과 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언론·교육활동을 통한 민족계몽과 독립사상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8·15 광복이 되자 여운형과 함께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해 부위원장으로 활약했고, 1950년 평택에서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평택=이상권 기자 sglee@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