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진 치과원장
▲ 김찬진 치과원장
문재인 대통령은 얼마 전 베를린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5대 정책방향과 4대 대북 제안을 제시하는 신 베를린 선언을 발표했다. 정책방향 중 하나가 비정치적 교류 협력 사업의 정치·군사적 상황과의 분리였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와는 다르게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북한에 대한 강한 압박을 통해 남북관계의 변화를 가져오고자 했다. 지난 9년 동안 북한과의 대화는 단절되었고, 금강산 관광도 중단되었으며, 개성공단은 폐쇄되었고, 거의 모든 비정치적인 인도적 지원 사업들도 멈추다시피했다. 북한은 북한대로 천안함 사건, 지속적인 핵실험, ICBM(대륙 간 탄도미사일) 개발, SLBM(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개발 등 벼랑 끝 전술을 지속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한국을 둘러싼 강국들의 이해관계는 대한민국의 통일에 대해 서로 뚜렷한 시각차가 존재하며 이러한 상황은 통일에 대해 상당이 어려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문재인 정부는 지난 9년 동안의 보수 정부와는 다르게 단절된 남북 관계 복원을 위한 노력을 시작했으며 남북 주민들의 동질성 회복을 위해 민간 차원의 교류와 협력,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적극 도와주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여러 가지 민간 차원의 교류 분야 중 보건의료는 정치적 중립성을 가지면서 북한 주민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분야이다. 남북한의 동질성을 회복시키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현재 북한 보건의료의 현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북한 보건의료의 체계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무상의료를 기초로 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보건의료 전달체계를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보건의료제도와 유사한 전 국민건강보험체계를 형성하는 데 반해 북한은 의사가 정해진 일정 지역을 담당하여 진료하는 의사담당구역제와 국가가 모든 의료장비와 시설을 소유하며 모든 진료를 하면서 치료비를 받지 않고 하는 무상의료제도, 병의 치료보다 예방을 중시하는 예방의학체계를 기본 근간으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체계는 1990년대 중반 김일성 사망 후 경제 상태가 악화됨에 따라 보건의료시스템이 무너져 북한 주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은 결핵이나 말라리아와 같은 감염성 질환의 급증과 신생아·영유아 사망의 증가, 좋은 의약품의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의료기기는 낙후되고 의료기술이 부족해 제대로 된 의료 환경이 망가진 상태이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른 북한의 기본적 보건의료 지표를 살펴보면, 평균 기대 수명이 여성 73.8세, 남성 69.1세로 남한 주민들의 수명에 비해 평균 10년 이상 짧은 상황이다. 가임기 여성의 사망을 뜻하는 모성 사망률도 인구 10만명당 82명으로 남한에 비해 대략 8배 정도 높다. 영유아 사망률도 출생 1000명당 북한은 24.9명이고 남한은 3.4명으로 7배의 차이를 보인다. 감염에 의한 사망률도 약 3배의 지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질병의 양상을 보더라도 결핵 환자, 말라리아 환자, B형 간염 환자가 전 세계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상당히 높다. 우리나라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에 많이 나타났던 감염성 질환의 전반적인 노출 형태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보건의료지원은 시급히 지원을 필요로 하는 상태이다.

통일 독일의 경우 헬무트 콜 서독 수상은 서독과 동독에서 보건의료의 차이가 심하다는 것을 알고 통일이 되기 대략 15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동독에 대해 인도주의적인 의료의 지원을 계속 하였다. 이러한 노력이 지속되면서 서독과 동독이 통일이 되었을 때 다른 분야보다도 더 빠르게 동독 주민들의 건강지표와 보건지수는 급속도로 향상되었다. 서독과 동독이 통일 독일이라는 외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동질성을 회복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했다.

남북한이 분단된 지 70년이 지난 현재 남북한의 건강 수준 차이는 동서독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간격을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남한과 북한의 보건의료 상황을 보면 통일 전 서독과 동독의 차이보다 더 큰 보건지표의 차이가 존재한다. 이러한 상태로 지속되다가 갑작스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통일이 되면 많은 보건의료의 차이로 인해 남과 북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다. 동질성을 회복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며 통일 후 북한 주민들의 보건의료지수를 남한 주민들의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갈 게 뻔하다. 따라서 남북 주민 간 하나라는 동질성을 얻고 통일 후 비용을 절감하려면 바로 지금부터라도 북한 주민들이 가장 필요로 하고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인도주의적 차원의 보건의료 지원이 이 시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