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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제막식을 제대로 못 본 국회의원

김원진 사회부 기자

2017년 08월 14일 00:05 월요일

날씨가 많이 덥긴 더웠다. 저녁 6시가 넘었는데도 낮 동안 달궈진 아스팔트에선 뜨거운 김이 연신 피어 올랐다. 12일 인천 부평공원에서 열린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상 제막식에 함께 한 시민과 관계자들 셔츠가 등에 철썩 달라 붙을 정도였다. 땀이 물처럼 흐르는 날이었다.
참석한 국회의원들은 격식을 차리느라 재킷까지 걸쳤으니 그 더위가 오죽했을까. 그래서인지 주최 측 내빈 소개가 끝난 것을 시발점으로 국회의원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떴다. 행사 시작 10분도 채 안 돼 어떤 의원이 제일 먼저 엉덩이를 뗐다. 마지막까지 제막식을 지켜본 의원은 몇 명 없었다.

이날 전국에서 처음으로 일제강점기에 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들을 기리는 동상이 부평공원에 세워졌다. 징용노동자상에 붙은 제목은 '해방의 예감'. 이원석 작가(51)는 강제위안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일본 육군 조병창에서 일해야만 했던 지영례 할머니와 이곳을 토대로 독립운동을 벌인 이연형 할아버지, 두 실존 인물을 부녀(父女)의 연으로 묶는 시도를 했다. 부평공원은 일본 육군 조병창이 있던 미군기지 캠프마켓 맞은편에 있다. 부평공원은 일본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의 군수공장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행사 내내 징용노동자상은 금색 천에 가려져 있었고 막바지에 모습을 드러냈다. 동상에서 소녀로 표현된 지영례 할머니는 이제 아흔을 바라보는 노인의 모습으로 시민들 앞에서 "우리를 기억해 줘서 고맙다"고 전해 깊은 울림을 줬다. 몸이 편찮아 며느리 부축을 받았다. 돌아가신 이연형 할아버지를 대신해 장녀 이숙자씨도 함께 자리를 빛냈다.

제막식을 축하하기 위해 왔던 국회의원 대부분은 일찍 행사장을 떴기 때문에 동상도 못 보고, 지영례 할머니와 이숙자씨의 뜻깊은 말도 듣지 못했다. 행사 진행자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일어나 인사하는 게 주목적이 아니었다면 1주일 중 가장 바쁜 토요일 저녁에 기껏 와서는 무더위 속에서 땀만 빼고 간 셈이다.

국회의원 신분이라 워낙 다양하고 많은 행사에 초청되다 보니 이런 식의 일 처리는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제막(除幕)식에 와서 동상 천을 막 걷어내는 것도 못 지켜볼 정도로 바쁜 것이다. 매일 수 없이 스쳐 지나가는 일정 속에서도 '알맹이'는 잘 챙기는 사람들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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