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그 시대 인천의 아버지와 딸"
"아픔 외에도 투쟁 등 강력한 에너지 담고파"
오는 12일 국내 최초로 인천 부평공원에 세워질 징용노동자상에서 이연형(1921~2009년·남) 할아버지와 지영례(89·여) 할머니는 부녀지간으로 표현됐다.
불안한 표정의 딸이 몹시 마른 아버지 팔을 붙들고 서 있다. 아버지는 해머 손잡이에 손을 얹고 땀을 닦는다.
실존 인물인 두 사람은 사실 일면식도 없는 사이다.
'해방의 예감'이라는 제목의 징용노동자상을 제작한 이원석(51) 작가는 작품 구상을 위해 일본 육군 조병창에서 일하던 노동자들 사연을 수집하던 중, 두 인물을 아버지와 딸로 엮는 시도를 했다.
각자 개인사를 세대로 연결 지으며 민족사는 물론, 지역성을 동시에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인천 이야기가 담긴 인천만의 징용노동자상을 만들고 싶었다"며 "징용노동자상, 소녀상 등에 아무리 대단한 이데올로기가 있다 하더라도 하나의 모습으로만 표현된다면 그건 작가가 아닌 디자이너가 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지역색이나 당시 스토리를 담아야 할 역사 기념비가 상징과 기호에 갇히는 것을 경계하는 시선이다.
이 작가는 "일제강점기 인천 징용 역사를 보면 단순히 아픔만 있었다기보다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려는 강력한 에너지도 있었다"며 "이연형 할아버지께서 일본 육군 조병창을 중심으로 부평 전역을 돌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조선독립당에 전달한 것처럼 동상에 이런 스토리를 담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어 "8·15광복의 결정적인 이유가 원폭 투하로 일본이 항복한 데 있지만 그 전부터 모래성에 꽂힌 깃발을 쓰러뜨리기 위해 조금씩 모래를 긁어냈던 선조들이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12일 징용노동자 제막식에는 지영례 할머니와 돌아가신 이연형 할아버지를 대신해 그의 딸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연형 할아버지 실제 딸과 이원석 작가가 맺어준 가상의 딸이 한 자리에 서는 순간이다.
이원석 작가는 "그동안 지영례 할머니를 직접 만나 뵙고 이야기를 전해 듣고 싶었는데 할머니께서 부담스러워 하셔서 고집을 피울 수 없었다"며 "내가 제작한 동상과 할머니의 기억이 얼마나 맞았는지 여쭙고 싶다"고 전했다.
/글 김원진 기자 kwj7991@incheonilbo.com /사진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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