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현 정치부 부국장
최근 부산지역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부산시를 국가를 대표하는 '해양수도'로 만들기 위해 구체적인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항만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요지는 간단하다.
전국의 항만관련 주요 기관들을 부산으로 집중시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부산을 새로운 해양 관련 중심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해양·항만정책을 다루는 해양수산부 김영춘(부산 출신 3선 국회의원) 장관이 공공연히 부산 해양수도론을 주장하고 있다.

얼마 전 부활된 해양경찰청의 부산 유치, 인천에 위치한 극지연구소의 부산 이전, 해사법원 부산 유치 등의 주장들은 바로 이 같은 정책적 의도와 연계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지난 2003년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주도한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노력과 궤적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정부·여당은 2003년 12월 국회에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지방분권특별법 등 이른바 '지방분권 3대 특별법'을 제정했다.
'신행정수도특별법'은 위헌결정이 내려지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수도의 기능을 나누며 지금의 세종특별시가 공식출범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국가균형발전법'은 수도권 규제와 지역의 사회간접자본 확충 등의 지방발전정책을 구체적으로 지방의 산업발전으로 전환하기 위한 정책이다. 지역의 균형적인 발전을 정책적 목적으로 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가능하도록 한 법안이다.

이 법을 기초로 수도권 지역의 대기업과 공장들이 잇따라 지역으로 이전되는 결과를 낳았으며, 오히려 수도권은 경제측면에서 역차별을 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지방분권특별법'은 지방자치의 내실화를 위해 다양한 제도를 도입·시도하고 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들 법안 중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보면 과거와 지금의 정부 태도 변화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지방분권 3대 특별법을 제정할 당시 여권에서는 수도의 기능을 분리하면서까지 국가의 균형발전을 주도했으며, 수도권 내 대기업 공장들까지 지방으로 이전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기틀을 마련하면서까지 강제성을 담아냈다.

명분은 균형발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현재에도 서울과 부산에 집중된 해양·항만 관련 기관과 제도를 모두 부산 한 곳으로 모으려 하고 있다. 균형발전에 역행하는 것이다.
현재의 해양·항만관련 업계의 현실을 살펴보자.
해양수산부 산하 공공기관 20개 중 서울 소재 기관이 7개, 부산시가 6개, 인천시가 2개 등이며 나머지는 안산과 전남 등지에 1곳씩 나뉘어 있다. 이미 부산시는 서울에 버금가는 만큼 산하기관을 보유한 해양 중심지역이다.

한국선주협회, 한국선박관리산업협회 등 해양산업과 관련한 협회 등이 가입하고 있는 한국해양산업총연합회 산하 52곳 회원사들 중 24곳은 서울에, 부산에는 15곳이 위치하고 있다. 인천은 2곳에 불과하다.
부산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더욱 많은 해양 관련 기관과 업체를 모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국가발전차원에서 보면 불균형을 초래하는 정책이며, 극도의 지역이기주의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최근 '항만산업균형발전법'의 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전국에 산재한 항만도시들의 균형적인 발전을 추구하고, 지역특성에 맞는 항만기능의 발전을 담보할 수 있는 내용의 제도적 틀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의 균형발전을 토대로 출범한 과거 노무현 정권의 맥을 잇는 문재인 정부에서 진행하는 것이 오히려 명분이 있다는 판단이 든다.

인천은 물론 부산지역의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들도 이런 방향으로 전국 항만의 균형발전에 관심을 쏟을 때다. 전국의 항만도시는 모두 우리나라의 발전을 담당해야 할 책무를 지니고 있다. 해양산업은 이제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다져나가야 할 분야가 된 지 오래다. 어느 한 도시의 몫이 아닌 것이다. 이제 다양한 지역특성을 지닌 전국의 항만도시들이 모여 새롭게 논의에 나설 시점이 됐다.

무역이 유일한 경제성장의 돌파구였던 '대한민국'. 항만산업을 독점하겠다는 생각은 시대착오다. 모두가 힘을 합쳐 나아가는 것만이 방법이다. 그래서 '항만산업균형발전법'이 필요하며, 이제 그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