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 안성 우주공업사 대표, 38년째 소외이웃 후원활동
보육원생 2명과 자매결연 … 늦깎이 대학장학생 이력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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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아직도 저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안성에서 공업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학균(62·우주공업사 대표)씨는 38년 동안 자신 보다 처지가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봉사활동에 앞장서 지역사회에서 귀감이 되고 있다.

안성시 보개면 구사리가 고향인 김씨는 5남2녀 중 4째로 태어났으나, 집안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16살 때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김 대표는 "아무것도 없이 막상 서울에 올라오니 막막했다. 취직자리를 구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녔지만 취직이 쉽지 않았다"며 "다행히도 자동차 정비공장에 취직돼 서울생활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생활을 하던 중 자신도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처음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당시 월급이 20만원 정도 였다. 이 중 2~3만원정도로 평화시장에서 생활용품을 구입해 인근 보육원에 물품을 전달했다"며 "그 당시 원생들이 내가 사준 물품을 받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흐뭇해 그 때부터 봉사활동을 본격적으로 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에게도 시련이 닥쳐왔다.

그는 82년도 다니던 직장을 나와 카센터를 개업했으나 경영의 어려움으로 폐업하고 86년도에 고향인 안성으로 내려와 직장생활을 하다 부속품가게를 차렸다. 그 이후 생활형편이 나아지기 시작하면서 95년에 현재 자리에 우주공업사를 개업하고 낮에는 자동차를 수리하고 밤에는 고철과 폐지를 모으는 일을 빠짐없이 23년간 해왔다. 그리고 공업사 내 모금함과 일주일에 두 번 수집한 고철과 폐지를 팔아 관내 보육시설과 노인보호시설 등에 지속적으로 후원을 하고 있다.

김 대표는 "한 번은 신생보육원에 생활용품을 전달하러 간적이 있는데 아이들이 나에게 '아빠'라고 불러 가슴이 뭉클했다"며 "이후 원생 2명과 자매결연을 맺고 친자식처럼 보살폈다"고 말했다.

그는 봉사활동 하는 것 외에 또 다른 소원이 하나 있는데 그건 대학교 학사모를 써 보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2012년 마침내 두원공대 자동차과에 합격하게 된다.

김 대표는 "집안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지만 대학교를 졸업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해 왔다"며 "합격한 이후 단 한 차례도 지각이나 결석을 한 적이 없고 2년 내내 장학금을 받고 다녔다"고 말했다.

그와 수년간 알고 지낸 안성시 박주덕 팀장은 "수십년간 본인 생활형편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남을 돕는 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분이 계셔서 세상이 살만 한 것 같다"며 "박 대표님 처럼 남들 모르게 선행을 펼치고 계신 분들은 칭찬받아야 하며 널리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나는 한 번도 남을 돕는 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마음을 나누는 것 일뿐"이라며 "내가 기력이 다 하는 날 까지 지금 해 오던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성=오정석 기자 ahhims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