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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는 보기 플레이를 피하기 위해, 아마추어는 더블보기 플레이를 피하기 위해 골프를 한다고 한다.

프로에겐 최악의 점수가 되는 보기를 피하다 보면 파를 기록하는 것이고 그러다가 버디의 기회가 오는 것이고, 아마추어에게는 더블 보기를 피하려 이런 저런 고심 끝에 보기를 기록하다가 모처럼 찾아오는 기회에서 파를 기록한다고 해서 그렇게 불리고 있다. 그렇다면 위대한 보기 플레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도 프로의 경기에서 붙여진 해괴한 기록에 말이다.

지난 주 남녀 골프 경기를 통틀어 지구촌 최고의 골프 경기인 146회 브리티시오픈대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지구상에 단 하나 존재하며 최고의 역사와 권위를 자랑한다 하여 언제부턴가 디 오픈 (THE OPEN)이라고도 불린다.

대회 마지막 날인 일요일 영국 사우스포트 근처 로열 버크데일 골프클럽에서 일어난 일이다. 최종 라운드에 나선 미국의 두 선수 조던 스피스와 매트 쿠차의 최고의 대결에 세상의 관심이 모두 쏠려 있었다.

두 선수는 전날 3라운드까지 합계 각각 11언더파와 9언더파의 기록을 안고 마지막 라운드에 임했다. 타 선수들과 제법 타수 차이도 많이 나 이변이 없는 한 그들간의 1, 2위 대결로 구도가 좁혀진 상황이었다.

스피스는 예상외로 첫 홀 보기부터 시작하며 3오버 파를 기록하며 12번 홀까지 두 선수는 마침내 동 타인 9언더파를 기록하며 6개의 홀을 남기고 있었다. 대회의 흐름은 투어 생활 17년차이면서 39살의 나이에 메이저 우승 기록이 없던 목마른 쿠차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문제는 다음 홀인 13번 홀, 파 4 홀에서 일어났다. 부진과 고전을 면치 못하던 스피스의 티샷이 도저히 믿기 어려울 정도의 악성 슬라이스가 나면서 시작되었다. 평상시에 도저히 볼 수 없었던 스피스는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으며 절망의 얼굴을 보이던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후담이지만 스피스는 그간의 프로 생활 속에 그런 슬라이스 구질을 쳐본 적이 없다고 회고했다.

볼이 떨어진 지점은 코스 오른편을 한참 벗어난 구릉(필자는 차라리 작은 산이라고도 부르고 싶다)속 질긴 러프에 처박히고 말았다. 게임의 흐름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데다 상대방 쿠차 선수는 비교적 순조로운 티샷을 만들어 냈다. 캐디와 함께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내린 결론은 언플레이어블 볼을 결정하고 이를 선언했다. 이는 경기자가 공을 칠 수 없다고 판단하면 본인의 자유의사로 1벌 타를 받고 룰에 주어진 3가지 옵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여기서 잠시 해당 룰을 살펴보면 언플레이어블 볼 (ball unplayable)은 첫째 원구를 최후로 플레이한 지점에 되도록 가까운 지점에서 플레이, 둘째 홀과 볼이 있었던 지점을 연결한 직선상으로 그 볼이 있었던 지점 후방에 볼을 드롭. 직후방이라면 거리는 제한이 없다. 셋째 그 볼이 있었던 지점에서 2클럽 길이 이내로 홀에 더 가깝지 않은 곳에 볼을 드롭한다.

노련한 스피스는 두 번 째의 옵션을 선택한다. 볼이 놓인 지점과 홀을 연장한 후방선상은 선수들이 시합전 몸을 푸는 연습장이 위치한 곳이었고 공교롭게도 이번 대회를 위해 선수들의 클럽을 점검하고 지원해주는 용품사의 대형 투어 밴을 주차시키는 곳으로 임시 사용하던 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피스의 사용 클럽을 지원해주는 소속사의 투어 밴이 샷 자리를 막았고 스피스는 이곳에서 또 한 번의 '움직일 수 장애물'의 무벌타 드롭을 허용 받으며 샷을 구사할 자리를 확보했다.

스피스는 그린이 도저히 보이지도 가늠할 수도 없는 거리 230야드 지점에서 3번 아이언을 꺼내들고 그린 가까이 도착 시켰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시간은 거의 30분가량이나 지체되었다. 냉정함과 끈기가 한꺼번에 드러낸 노련함의 시작이었다.

결국 이 홀에서 보기를 기록하며 경쟁자 쿠차에게 한 타를 뒤지게 되었다.

반전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다음 홀부터 연속해서 버디 이글 버디 버디를 기록하며 다섯 타를 줄여가며 이후 두 개의 버디를 기록한 쿠차를 상대로 재역전에 성공하며 마침내 클라레 저그(디 오픈에서 우승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우승컵의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게 되었다.

13번 홀에서 일어난 고통의 시간 속에 탄생한 그 '위대한 보기'는 그 다음 홀부터 이어질 부활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 누가 감히 예상이라도 할 수 있었겠는가?

/前 SBS골프채널·MBC-ESPN 골프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