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걸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계양산은 해발 395m로, 도서지역인 강화의 산들, 마니산(469m)·혈구산(460m)·고려산(436m)을 제외하고는 서울 서쪽에서 가장 높다. 이 산은 고려시대 이 지역 명칭의 변화에 따라 '수주악(樹州岳)', '안남산(安南山)'으로 불리다가, 고려 후기 계양도호부가 들어서면서 '계양산(桂陽山)'이라는 이름이 붙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계양산에는 지역 명칭의 변화에 바뀌게 된 명칭 외에도 몇 가지의 별칭이 더 있다. 우선 산이동 설화의 한 유형으로, 강화의 마니산 한 자락이 떨어져 나와 계양산이 되었기에 마니산을 '형산(兄山)'이라 하고 계양산을 '아우산'이라고 하는 별칭이 있다. 또한 계양산에 구름이 뜨면 반드시 비가 내리고, 해풍이 몰아치면 비가 갠다고 하여 '일기예보산'이라고 하는 별칭도 있다. 그리고 주봉 동쪽의 작은 봉우리에 옛 산성(山城)이 있어 '고성산(古城山)', 조선 초기에 이씨가 수축하였다고 하여 '이성(李城)' 또는 '이성산(李城山)'이라고도 한다.

계양산이 이렇듯 다양한 이칭과 별칭을 가졌다는 것은 그 지역의 중심이며 대표적인 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련 지자체도 이 점을 인식하고, 역사성과 상징성을 지닌 계양산을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모색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계양산성을 복원하여 국가사적으로 등록하려는 시도다. 이를 위해 관련 지자체는 이미 7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시행했으며, 현재 8차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다. 그리고 지난 해 7월에 국가사적 지정을 위한 신청을 한 이후 산성박물관을 짓기로 하는 등 여러 가지 후속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지자체의 행보는 일단 긍정적이라고 판단된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것의 이면에는 다소 아쉬운 점도 보인다. 현재 계양산성의 복원을 위한 8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지나치게 산성의 복원을 위한 유적 발굴에만 치중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물론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도 중요하지만 발굴조사와 더불어 여기에 합당한 콘텐츠 개발과 이를 통한 스토리텔링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계양산성이 국가사적이 되더라도 시민들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는 스토리텔링의 개발이 없다면 외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관련 지자체도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하여 계양구는 산성박물관을 건립하기로 하였으며, 역사문화의 거리를 조성하고자 하는 등 다양한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들은 당연히 역사성을 바탕으로 하여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역사성을 배제한 채 단순히 시민의 관심을 끄는 콘텐츠만으로는 실패하기 쉽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계양산 및 계양산성과 관련된 인물 이야기나 사건, 지역민의 삶과 전승 등을 반영하는 등 역사의 원형을 찾는 작업은 시민들의 흥미를 유발함과 동시에 지역민들의 애향심을 고취하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다.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를 제안한다면 우선 계양산 및 계양산성과 연관된 설화를 통한 스토리텔링의 개발이 필요하다. 계양산에는 장사굴 설화, 아기장수 설화, 징매이고개 설화, 임꺽정 설화 등 다양한 설화들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양산성, 중심성, 병방동 더 나아가 연희진까지 포함한 군사유적을 통해 관방(關防) 관련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개항기 무렵 정지석(鄭芝錫)이 계양지역의 팔경을 노래한 <계양팔경(桂陽八景)>을 활용하는 것도 역사성과 더불어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라고 생각된다.

<계양팔경>은 '허암냉정(虛庵冷井) 허암의 찬우물/뇌암숙운(雷岩宿雲) 뇌암에 머무는 구름/난포영엽(蘭浦靈葉) 난포의 신령스런 나뭇잎/계산현폭(桂山懸瀑) 계양산의 폭포/미도낙조(尾島落照) 미도에 지는 해/매봉조휘(鷹峰朝輝) 매봉의 아침 햇살/탁옥성문(琢玉成文) 탁옥봉의 글읽는 소리/천마정서(天馬呈瑞) 천마산의 상서로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상당부분은 현재 서구에 속해 있는 곳이고 현재 사라진 곳도 있지만, 계양팔경이라는 제목에 모두 걸릴 수 있기에 충분한 콘텐츠가 될 수 있다. 물론 현재에 맞게 새롭게 팔경을 지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계양은 정명(定名) 8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곳으로, 예로부터 사통팔달의 교통 중심지였다. 삼국시대 초기부터 서해안에서 생산된 소금을 서울로 옮겨가기 위한 통로 역할을 했으며, 고려 때는 삼남 지방에서 수도 개경을 가기 위한 관문이었기 때문이다.

현재도 공항철도, 공항고속도로, 경인고속도로, 외곽순환도로, 경인운하가 경유하고 있어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교통의 편리함은 이동의 편리함으로 이어지게 되고, 이는 결국 주민들의 애향심과 정주의식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관련 지자체는 이러한 점을 인식하고 애향심과 정주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 개발에 신경을 써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