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국 인하대 교수
최근 언론 매체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핵심 키워드 중의 하나가 4차 산업혁명이다. SF 영화 <공각기동대>의 한 장면처럼 4차 산업혁명이 만들어 가는 미래 도시의 풍경을 다양한 전문가들이 감각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아닌, 기계와 로봇과 소통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이 탈바꿈시키는 우리 생활의 새롭고 낯선 모습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이야기 구조는 충격과 해결이라는 플롯 구조로 무장하고 있다. "2030년에 사라지는 직종", "4차 산업혁명시대 우리의 생존 전략" 등 독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감각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허망한 수치와 데이터 기반의 사례를 나열하는 방식으로 충격 요법의 스토리텔링을 전개하고 있다.
마치 세상에는 과학기술을 옹호하는 '테크노 낙관론자'와 과학기술을 두려워하는 '테크노 비관론'만이 존재하는 세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불안'에서 시작해 '불안'으로 해결된다는 <불안>의 저자 알랭 드 보통의 주장처럼 4차 산업혁명은 불안과 공포(phobia)의 심리적 라인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느 순간엔 미셀 푸코가 주장한 생체 권력(bio-power)의 바이러스 효과를 노리는 것처럼, 과학기술의 우수성만을 어필하는 4차 산업혁명의 한국식 담론 구조가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것은 4차 산업혁명의 담론 구조가 과학기술 기반의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이항 대립 차원에서 다양한 사례만을 전달하는 나열식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4차 산업혁명의 담론에 인문학적 정신과 가치를 덧붙이자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불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 등이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요구하고, 동시에 양극화 심화, 일자리 감소, 인간의 효용 가치 하락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의 진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문정신문화는 휴머니즘, 놀이 문화, 인문학적 지성 등의 개념을 실천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노동에서 벗어나, 놀이를 기반으로 동물과 기계와 차별화되는 인간 고유의 문화예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향유하는 터전을 제공할 것이다. "놀이가 상상력의 산물이고, 상상력의 놀이가 독창성을 낳는다"라는 칸트의 주장처럼 기술, 빅테이터, 인공지능, 문화콘텐츠 등이 융합하여 사람들의 심리적 기저에 숨겨진 욕망과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놀이문화를 창조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것이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의 참 주역은 머리가 비상한 지능적인 사람이 아니라, 인성을 갖춘 인문학적 지성을 갖춘 사람으로 인간과 사물, 인간과 로봇, 인공지능 시스템 등을 조정하고 조율하는 균형 잡힌 통찰력 있는 사람이다.
최근 지자체와 학계에서는 4차 산업혁명과 연관된 연구(R&D) 개발과 인력 양성에 필요한 국비를 확보하기 위한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융합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지속가능한 생태계 조성을 위한 산학연관 협력 모델의 핵심 열쇠가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융합 정신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2020년 개장 예정인 '인천세계문자박물관'의 전시콘텐츠는 인천의 정체성과 가치를 담아낼 것인가? 소셜 로봇(social robots) 분야에서 로봇의 기능적 가치보다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인문적 가치는 무엇인지? AR/VR 기술 기반의 문화예술, 교육, 게임콘텐츠 등의 놀이문화가 중독성보다는 건전한 여가문화를 조성할 것인지? 또한 인공지능과 스마트 자동차 시대에 영화, 드라마, 음악 등의 수동적 콘텐츠보다, 적극적인 체험을 유도하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문제 해결의 핵심 열쇠는 인간과 기계, 인간과 로봇의 체험과 상호작용을 연결시키는 인터랙티브 콘텐츠이고,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융합 정신을 역동화시키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시기이다.

바라건대 "너 자신을 알라. 그리고 너 자신을 다스려라"라는 인문학의 경구가 내포하고 있는 무한의 함축의미(connotation meaning)를 기계와 로봇이 해독할 수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유토피아를 상상하면서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적극적인 융합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