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승용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초빙연구원

중국의 민주화 운동가인 류샤오보(劉曉波)가 지난 13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89년 천안문사태 이래로 민주화운동과 투옥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2010년에는 그가 중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고 해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가 중국의 민주화와 인권운동을 한 것을 인정해 노벨상이 주어진 것은 중국이 민주적이지도 않고 인권에도 문제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으니, 중국정부 입장에서는 그가 곱게 보일 리가 없었을 것이다. 류샤오보는 공산당 1당 독재를 철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초빙연구원폐하자는 '08헌장'에 서명하는 운동을 주도했다고 해서 국가 전복 혐의로 수감됐고, 지난 5월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아 치료를 받던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작 중국 언론에서는 류샤오보의 사망 보도가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인들에게 중국이 민주주의 국가냐고 질문하면 어떤 대답을 할까? 공산당 총서기가 중국의 모든 권력을 장악해 우리의 국회에 해당되는 전국인민대표대회 국가주석을 겸하고 있는 것을 보면, 중국에는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들처럼 3권을 분립하고 있지도 않고 인민들의 공정한 선거에 의해 국가의 지도자를 선출하지도 않고 있으니 중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여기기 쉽다. 그렇지만 중국의 국호가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 역시 공화국으로서 공화정치 즉, 인민이 선출한 대표자 또는 대표 기관의 의사에 따라 주권이 행사되는 정치를 정부가 부정하지는 않는다. 지난날 우리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중국 역시 아직까지는 사회적으로나 정치경제적으로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상적인 의미의 공화정치를 실시하고 있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근대적인 공화정치의 이념이 옛날 왕조시절에는 중국에서도, 서구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공화정치'를 처음으로 표방하고 실시했던 것은 중국의 고대 주(周)나라 때였다. 주나라의 대표적인 폭군으로 알려진 려왕의 폭정이 날로 심해지자 BC842년 마침내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서 려왕을 쫓아냈다. 그런데 다른 왕이 새로 들어서거나 왕조가 교체됐던 것이 아니라 BC828년까지 왕 없이 대신들에 의해 집단지도체제로 나라가 운영됐다가 려왕의 아들 선왕(宣王)에게 왕위가 물려졌다. 이 시기를 '공화(共和)'라고 한다.

애당초 려왕이 백성들에게 쫓겨나기 전에 대신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소공(召公)은 막혔던 물이 한꺼번에 터지게 되면 큰 피해를 입게 되는 것처럼, "위정자는 백성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을 하게 하여야 합니다(爲民者宣之使言)"(사기·주본기(周本紀))라고 간언했다.

그렇지만 끝내 려왕은 소공의 간언을 듣지 않고, 도리어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을 잡아다가 벌을 주고 처형하기까지 했다. 이후로는 려왕에게 바른 간언을 올리는 이가 없게 되었고, 백성들이 결국 난을 일으켰던 것이다. 오늘날 중국에서 류샤오보와 같이 정치적인 소신을 주장했다는 이유 때문에 구금됐다가 사망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은 어떠한 정치적인 속박을 받지 않으며, 차별이 없어야 하는 공화정치의 기본 이념인 자유와 평등이 모든 인민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것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나라 시절 소공이 말했던 것처럼, 오늘날 역시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하고자 하는 말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라는 점을 깊이 되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