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한 인천대 교수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독일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베를린 구상을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구상에서 다섯 가지의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첫째, 우리가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 평화다. 둘째,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추구한다. 셋째,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평화를 제도화한다. 넷째, 한반도에 새로운 경제지도를 그린다. 다섯째, 교류협력은 정치군사 상황과 분리해 일관성 있게 추진한다. 그리고 먼저 쉬운 일부터 시작하자며 문 대통령은 첫째 10월4일 이산가족 상봉 및 성묘, 둘째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셋째 군사분계선의 적대행위 중단, 넷째 남북대화의 재개를 북에 제안했다. 과거 10년 동안 경색됐던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바꾸자는 제안을 G20 정상회담이 열리는 동안에 공개했던 것이다.

북한은 간을 보는 것인지 아니면 미국과 과거보다 훨씬 더 나은 상황에서 직접 협상을 벌이겠다는 것인지 우리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매우 시큰둥하다. 북한의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 문 대통령의 평창동계올림픽 남북단일팀 구성제안을 천진난만하기 짝이 없다고 일축해버렸다.

처음부터 기대를 산산히 깼던 것이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7월4일에 맞춰서 북한은 ICBM인지 아니면 IRBM인지 장거리 미사일을 성공적으로 시험 발사했다. 문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교류에 전기를 마련했건만 오히려 김정은은 보란 듯이 '선물'을 계속 보내겠다고 넘겨버렸다. 북한은 남북 사이에 교류를 시작하려면 무엇보다 약 일년전에 중국의 북한식당에서 단체로 탈북했던 종업원들부터 다시 북측에 돌려놓으라고 주장한다.

꽉 막혀있는 남북의 불행한 현주소다. 그러나 이렇듯 답답한 상태에 있다가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한 순간에 풀릴 수 있는 것이 바로 남북관계다. 과거에 그랬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기대가 크다. 시간의 문제이지 남북관계는 반드시 풀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 인천은 인식의 전환을 도모하고 다른 광역시·도보다 남북의 교류와 협력에 앞장설 준비를 갖추기 시작해야 한다. 5월 대선이 끝난 뒤 6월에는 이미 인천시에서 남북교류협력기금으로 말라리아약을 사서 북한에 전달하려 했다. 물론 북한이 이를 접수하지 않았다. 이제 인천시는 다음의 교류협력 사업을 기획하고 준비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인천이 과거 해왔던 수준으로 남북교류협력 사업을 재가동해야 할 뿐 아니라 그 이상으로 더 확대해야 할 것이다.

가장 최근 인천에서 남북 사이의 교류협력이 있었던 것은 2014년 10월4일 열린 2014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였다. 벌써 3년전의 일이 되었으나 기억은 생생하다. 이때 남북 사이에 이어진 장기간의 갈등과 경색 국면에도 불구하고 황병서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노동당 비서 등 북한의 최고 실세 3인이 인천을 찾았다. 이외에도 북한의 고위급 인사가 인천을 방문해 한반도의 평화 분위기를 조성한 사례가 더 있다. 2007년 11월29일 김양건 북한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인천을 방문했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두터운 신뢰를 바탕으로 모든 대남사업을 총괄하고 있던 김 부장의 인천 방문은 대북사업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제3-4기 민선시장 임기 동안(2002~2010년)에는 2000년 정상회담 이후 남북 교류협력 사업이 활성화되는 국내외적 환경에 조응하여 인천시의 관련사업도 상당히 활성화됐다. 대통령과 시장이 속한 정당이 달랐어도 남북 교류협력 사업의 빈도가 가장 많았고 사업의 종류도 다양했다. 그 뒤 제5기 민선시장 임기 동안(2010~2014년)에는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 이후 경색된 남북관계에도 불구하고 각종 스포츠 교류와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합의에 따라 서해평화협력지대를 추진하는 노력이 이어졌다.

2014년에 시작된 제6기 민선시장 임기 동안에는 2014년 아시안게임이 열렸다. 이제 새 대통령이 취임한 뒤 긴 공백을 깨고 유정복 시장이 새롭게 조성될 한반도 정세에 맞춰 적극적인 교류협력 정책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과거 인천은 남북교류협력에 있어서 다른 광역시·도보다 성과를 많이 남겼던 시절이 있었다. 2005년 5월30일부터 6월2일 사이 안상수 시장은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는 처음으로 북한의 공식초청을 받아 역사에 한 획을 긋기도 했다. 인천은 남북 교류협력에 있어서 인도적 지원(2004년 용천참사, 2005년과 2007년 대규모 홍수피해 구호 등), 개발 지원(2005년 평양치과병원, 2007년 평양시 체육단 축구장 현대화사업, 창광거리 음식점 현대화사업 등), 스포츠 교류(2005년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 2014년 아시안게임, 각종 축구대회 등) 등을 추진했다. 이제 다시 접경도시 우리 인천이 남북교류협력에 앞장서나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