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현 정치부 부국장
기원전 399년, 아테네 법정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유죄판결을 앞두고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다. 소크라테스는 이 자리에서 자신이 왜 무죄이며, 자신이 유죄로 판명나 죽음을 맞는다면 아테네에 얼마나 손해인가를 역설한다.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나는 신이 여러분들에게 준 선물입니다. 나는 등에입니다. 게으르고 살찐 말들의 등에 묻어 피를 빠는 등에입니다. 이로써 말들이 더욱 긴장해 열심히 달리게 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저는 이를 통해 어떠한 이익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강연의 대가를 받지도 않았습니다. 순순히 자신들이 알아야할 것과 모르고 있는 것에 대해 논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입니다" 말이 국가와 집권자들을 일컫는 은유임은 누구나 아는 대목일 것이다.

그의 역설은 기존의 기득권층과 집권자들의 논리를 반박하는 것이었고, 자신의 토론과 논리가 철저히 아테네를 위한 것이었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배심원들로부터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미 권력층의 눈 밖에 난 소크라테스는 30표 차이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의 저서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생생히 그려져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친구들의 권유를 거부하고 독배를 들며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이로써 소크라테스는 철학과 소신을 위해 죽음을 택한 성인으로 후대에 알려진다. 이것을 두고 세인들은 '민주주의의 한계', '우민정치' 등의 이유로 민주주의를 비판하는데 활용한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에서 언듯 언론의 역할을 그려본다. 물론 과거와는 달리 언론의 역할이 확대되고 인권이 확장되면서 언론은 역할도 활동영역도 그만큼 늘어나는 추세다. 요즘도 저널리즘을 위해 목숨을 바친 기자들의 이야기가 심심찮은 데 옛이야기를 꺼낸 것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늘 내게 남다른 감회를 주기 때문이다.

인천일보가 지난 15일로 창간 29년을 맞았다. 1988년 7월15일 '인천신문'으로 창간, 제1호를 제작한 이래 어느덧 지령 8278호를 발간한 것이다. 인천의 언론사는 우리나라 지역언론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다. 인천일보는 1945년 인천부에서 창간된 대중일보의 맥을 잇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개화지로서 인천, 그곳의 언론사이며, 최초의 지역지로서 인천의 자긍심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대중일보는 인천을 기반으로 한 일간신문으로 출범 당시부터 지역지를 자처했다. 그리고 지역지가 처한 재정적 헌계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여러 번 변화를 겪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아픔을 겪었다.

인천일보 또한 인천을 기반으로 하는 언론사이다. 인천일보 역시 그동안 지방지로서의 한계에 갇혀 많은 변화와 아픔을 겪어야했다. 인천이라는 지역적 한계는 인천일보가 극복해야할 과제다. 인천일보는 그러나 창간 29년을 맞아 그동안 겪었던 지역지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하고있다. 여러 청신호도 있다.

먼저 인천시가 인구 300만명의 대도시로 탈바꿈했다. 규모의 경제학으로 보면 이미 자급자족이 가능한 도시로 성장한 것이다. 여기에 정치적으로 지방분권형 개헌이 추진되고 있는 시점이다. 이는 인천시 전체의 재정에서 그동안 20%에 불과했던 재정운영권이 40%로 커지면서 인천 특성에 맞는 사업추진이 가능해지는 단계에 접어든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인천일보의 역할은 무엇일까. 앞으로 인천일보는 무엇을 지향하며 지역에서 어떠한 행보에 나서야 할 것인가.

소크라테스의 지적처럼 언론의 역할은 '등에'와 같을 수 있다. 오늘의 국가시스템은 자유주의와는 궤를 달리한다. 국가가 사회·경제 분야에 어느 정도 개입함으로써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것이 옳다. 국민의 이익과 현실적 개선은 어느 정도 강제성이 개입하지 않으면 목적을 이루기 어렵다는 것이 그동안 민주주의가 걸어오며 깨달은 진실이기도 하다. 인천언론의 역할은 분명해진다. 기득권층이 게을러지지 않도록 긴장을 주고 사회주도층이 엉뚱한 결정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의 끈을 늦추지 않는 것이 바로 인천일보가 해야할 일인 것이다.

2400년 전, 한 성인의 죽음에서 오늘날 언론의 갈길을 찾는 것이 과연 옳은지는 모르겠다. 다만 언론이 끝없이 시정부와 기득권층을 대상으로 긴장감과 책무감을 심어주는 역할을 담당하는것을 빼면 언론의 길은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