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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인천을 읽다] 마당 沈應植  

 

2017년 07월 17일 00:05 월요일
홀홀단신 불로리 할머니 떠난
세상 얼마나 무거웠으면 그 살던 집 주저앉았다

싸리개비 외만 남은 벽 틈으로 곰팡이 피고
바람이 불 때마다 혀 갈라지는 함석지붕
무너져 내린 가슴 걸어 닫고 몸져누운 대문에
할머니 젖꼭지처럼 주글주글 씁쓸하게
문고리를 물고 있는 다이얼자물통

저 문 열고 저승길 나설 때 펼쳐진
깊은 하늘길 참으로 어질하셨겠다

119 사이렌 소리 길게 얼른 가신 할머니
영감님 떠나신 삼십년 문설주에
캄캄한 황 씨 성 남기고 이름자만 떼 간 석고문패
그 곳 할아버지 문설주에 걸었을까

저승, 할머니 마당가
밤에도 낮처럼 환한 해바라기 꽃 피고
감꼭지 하나 말라붙어 죽은 감나무, 이승처럼
아랫도리 가지 틈에 쇠불알만 한 돌 끼워주면
밤낮 신방, 아들 딸 주렁주렁 감꽃 피겠다

마당가득 개망초 하얀 파마머리
구구 구 구 닭 모이 주는 소리
유월 햇살 반걸음 느릿느릿

할머니 마당





마당이란 그 집이 지닌 세계고 얼굴이다. 집주인이 어떤 세계관의 사람인가에 따라 정갈하기도 하고 수더분해지기도 한 것이 마당이다. 생사로 갈라져서 주인이 떠난 마당에는 그의 흔적만 있고 온기가 없다. 또한 그의 세계를 떠받치고 있던 기둥은 삭고, 입을 다물고 굳게 문고리를 물고 있는 다이얼자물통의 적막만 무겁고 버겁다. 살아생전 주인이 정갈한 성품을 지녔던 사람이었다면 이 적막이 떠난 그이를 더욱 그립게 한다. 죽어서 가 닿는 공간이란 이승에 남은 사람들은 도저히 가서 닿을 수 없는 세계라서 떠난 이를 생각하면 더욱 가슴이 아리고 슬픈 일이다. 인간의 유한성은 언제 어느 때나 어느 누구에게도 닥치는 슬픈 일이지만 이 덧없음이 또한 삶의 가치를 만든다. 하여 화자는 '영감님 떠나신 삼십년 문설주에/캄캄한 황 씨 성 남기고 이름자만 떼 간 석고문패/그 곳 할아버지 문설주에 다시 걸었을까' 라고 떠난 할머니를 생각하는데 이것은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죽음의 세계에서도 영속성으로서의 세계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화자의 내세관을 바탕으로 노래된 것이리라. 윤회와 내세관은 윤리와 도덕에 관련된 문제이긴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저승, 할머니 마당가/밤에도 낮처럼 환한 해바라기 꽃 피고/감꼭지 하나 말라붙어 죽은 감나무, 이승처럼/아랫도리 가지 틈에 쇠불알만 한 돌 끼워주면/밤낮 신방, 아들 딸 주렁주렁 감꽃'으로 피어만 난다면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깊은 하늘길 참으로 어질하'게 떠나신 할머니. 할머니가 주석하시던 마당에는 부재가 부재가 아닌 것으로 발걸음이 느릿느릿한 유월 햇살 반걸음처럼 여전히 '구구 구 구 닭 모이 주는 소리'로 할머니가 존재하고 화자는 그 적막 속에서 또 다른 한 세계를 건너가고 있다. /주병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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