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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인천] 바다·하늘길 품고 대한민국 상징으로

동양 최대 갑문 물류 중심지로...인천공항 세계최고 명성 자자

2017년 07월 14일 00:05 금요일
▲ 인천항에 4500t급의 선박 입 출입이 가능한 갑문이 완성됐다 (1917년 11월12일). 48피트 높이의 벽과 바닥은 견고한 콘크리트로 만들어 졌으며, 2중 개폐문이 완성 됐다. 다음 해인 1918년 8월 도크에 물을 넣은 후 도크 안 및 내항의 조수가 통하게 되어 마침내 개폐조정을 할 수 있게 됐다.
▲ 계선벽의 콘크리트 작업이 끝난 뒤 운반기를 옮겨와 그것을 이용, 갑문 벽체를 축조하고 있다 (1916년 4월 12일). 길이 324척, 높이 18척 규모의 갑거 옆벽을 시공하고 있는 장면이다.
▲ 인천항에 입항한 컨테이너선이 하역 작업을 하고 있다.
시곗바늘을 100년 전으로 돌려보자.

한적한 어촌에 불과했던 제물포에 1918년 10월 인천항 갑문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비록 일제의 수탈 목적이었으나 대한민국 최초 갑문식 선거가 완성된 순간이다. 이 일을 변곡점 삼아 인천은 조선시대 500년 내내 지속됐던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1974년 대형 선박을 품을 수 있는 갑거 2기를 갖춘 동양 최대 갑문항을 지었고 인천은 수도권 물류 및 한·중 교류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극지연구소가 송도국제도시에 둥지를 틀고 아라온호의 모항이 되면서 해양강국 대한민국을 이끄는 해양 메카 위치를 다져나가고 있다.

바닷길의 역사가 그랬다면 하늘길은 빛의 속도로 질주했다. 인천국제공항은 2001년 3월 개항 이래 해마다 5400만명의 여객과 450만t의 화물을 실어나르고 있다. 제2여객터미널은 올 가을 개장을 앞두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인천'은 이제 대한민국의 상징을 넘어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친숙한 낱말이 됐다.

2003년 8월 송도·영종·청라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돼 줄 거란 믿음 속에 국내 첫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다. 드넓은 바다를 메워 탄생한 송도국제도시는 마이스산업의 중심지이자 유시티와 스마트시티를 선도하는 모델로 부상해 도시개발 노하우가 외국에까지 수출되고 있다. 유엔 녹색기후기금(GCF) 본부에 이어 미국 나사(NASA) 공동연구센터도 이곳에 뿌리 내리려는 중이다. 바닷길, 하늘길에 이어 광활한 우주 개척의 유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인천사람은 주변 시선을 의식한다. 서울의 변방도시. 회색 굴뚝 도시. 빚더미 도시. 정체성도 주인도 없는 도시…. 언제부턴가, 누군가가 덧씌워 놓은 열패감의 그늘에서 서성인다. 하지만 타인들은 "역동적인 '인천의 힘'에 압도 당한다"며 부러워한다. 시민들이 초당적으로 뭉쳐 해경 부활, 인천고법 설치, 해사법원 유치, 지방분권 확대 등 굵직한 지역현안 해결에 합심하면서 피플파워를 발휘하고 있는게 좋은 사례다. 인구 300만명을 돌파하며 경제적 자신감을 얻었고, 빚도 상당 부분 갚아 재정건전화를 앞당겼다.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를 주는 열린 도시. 팔도 사람과 외국인이 한데 어우러져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다양과 개방성의 도시. 어쩌면 인천의 몸 속엔 이미 강하고 질긴 재창조의 DNA가 깊숙히 박혀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나약한 동물 무리에 뒤섞여 자신이 호랑이인 줄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모두 거울을 꺼내들자. 포효하는 인천의 얼굴이 눈에 확 들어오지 않는가.

/윤관옥 기자 okyun@incheonilbo.com

/사진출처=인천축항도록·인천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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