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덕포진 전경.

김포와 강화도 두 육지 사이 좁고 빠른 바다 물길인 강화해협에 조선의 마지막 방어선 덕포진이 있다.

북쪽과 남쪽의 해수면 높이 차가 커 물살이 험하고 소용돌이가 심하니 이를 '손돌목'이라 한다.

덕포진 손돌묘에는 손돌목과 관련된 슬픈 전설이 있다.

몽골군에 쫓겨 강화도로 피신하던 고려 왕이 갑자기 물살이 위태로운 것을 보고 손돌을 의심해 참수했다.

손돌은 죽음에 직면하면서도 "바가지를 물에 띄우고 따라가면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다"고 말해 왕이 위험을 넘겼다.

이후 자신의 잘못을 크게 뉘우친 왕이 손돌의 무덤을 만들고 제사를 지냈다.

그 후부터 뱃사공 손돌이 원통하게 죽은 음력 10월20일쯤이 되면 '손돌바람'이라는 매서운 추위가 찾아온다는 이야기가 있다.

덕포진은 조선시대에도 두 번의 아픔을 더 겪었다.

한 번은 흥선대원군이 8000여명의 천주교인을 학살하자 프랑스가 "조선이 선교사 9명을 학살했으니 조선인 9000명을 죽이겠다"며 침범한 병인양요(1866년)다.

초기엔 막강한 총포와 화력에 밀렸으나 양헌수의 기병작전으로 한 달 만에 프랑스를 무찔렀다.

또 한 번은 일방적으로 통상을 요구하다 불에 타 몰살한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빌미로 미국이 침범한 신미양요(1871년)다.

격렬하게 저항하던 조선군은 전선이 불리해지자 물에 뛰어들고 스스로 목을 찔렀다.

이에 미군은 승리했지만 철수했다.

그러나 이는 흥선대원군이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우고 쇄국 정책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덕포진에 가면 해안 철책선을 따라 '평화누리 길'을 걸을 수 있다.

덕포진의 아픔을 끝낼 수 있는 길을 길에게 물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