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등 연중 발생 불구 인력 1~2명 … 개선 시급
"고인(故人)은 AI 때문에 아픈 몸을 이끌고 일했어야 했고, 집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사상 최악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의 피해복구에 앞장서 온 포천시 50대 공무원이 숨진 것과 관련, 경기지역 내 AI·구제역 방역을 전담하는 가축방역관(수의직)들의 열악한 근로환경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천일보 6월26일자 19면>

지난 24일 오전 4시 30분쯤 지역 내 가축방역 업무를 총괄하던 축산방역팀 한모(51) 팀장이 의정부시 자택에서 가슴과 복부에 통증을 느끼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한 팀장의 사망 원인은 급성심근경색이다. 그가 숨지기 전 소화장애 등으로 찾아간 병원에서는 '정밀진단'이 필요하다는 진단결과까지 나온 상태였다.

하지만 한 팀장은 지난 겨울부터 이어진 AI 탓에 병원 치료는커녕 몸을 제대로 챙길 겨를도 없이 업무에 매진했어야 했다.

한 팀장의 근무일지에는 최소 7시간 이상의 초과근무(야근), 또는 '밤샘근무'가 비일비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포천시의 가축방역관 정원은 5명이다. 하지만 실제 근무자는 2명에 불과했다.

이에 일선 지방자치단체들은 방역 전담 공무원이 사망한 것이 '예견된 사고'라 입을 모은다.

AI와 구제역이 연중 발생하는 상황에서 도내 지자체 소속 방역 전문인력은 고작 1~2명에 그치거나, 아예 방역 전문인력을 두지도 못하는 지자체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26일 경기지역 지자체 등에 따르면 지난해 12월을 기준으로 경기도 31개 시·군에서 근무하는 가축방역관은 전부 31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농림축산식품부가 기준으로 정한 정원 대비 약 67% 수준이다.

가축방역관이 아예 없는 지자체도 안양·안산·군포·광주 등 10곳에 이른다. 가축방역관이 있다해도 화성시(4명)를 제외한 모든 지자체가 1~2명 수준의 인력을 보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지역 최다 축산농가지역인 포천·이천·안성·김포·파주 등 지자체도 마찬가지로 2명 안팎의 가축방역관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 지자체 가운데 수의사를 임시 방편으로 둔 곳은 AI·구제역 상황이 종료되면 인력이 빠져나간다.

이같은 전문 인력 부족으로 효과적인 방역 작업에 차질을 빚지만 AI·구제역의 전반적인 업무를 1~2명의 담당자가 도맡아 처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10개 양계농가만 보유하고 있는 수원시나 성남시 등 '도시화'가 이뤄진 지자체는 상대적으로 AI·구제역의 피해가 적어 전문 인력이 부족해도 일단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축산농가가 많은 지자체에 근무하는 가축방역관은 AI 등으로 임시 구성된 '특별대책반'이 해제될 때 까지 가축방역·현장점검 등으로 매일 파견되고 있다. 여기에 피해 농가 보상과 같은 행정업무도 수반되는 탓에 늦은 시간대까지 야근은 물론,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포천시 관계자는 "충분한 전문 인력을 두려해도 AI가 연이어 터지는 지역에서는 가축방역관이 '기피직종'으로 꼽히는 바람에 채용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며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지자체의 고난은 계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