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땅이 타들어간다. 예전 같으면 이 정도 가뭄이면 가장 먼저 수돗물이 끊겼다. 물을 많이 사용하는 목욕탕이나 풀장의 영업도 금지시켰다. 급수차가 동네를 돌며 먹을 물을 배급했다. 어른 애 할 것 없이 함석 물통인 '초롱'을 비롯해 동원할 수 있는 온갖 용기를 들고 급수차 앞에 길게 줄을 섰다. 가뭄이 심해지니까 오래전에 전해 들었던 수돗물과 관련한 '황당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경기도 부천시 성지동 30여 가구는 한동안 수돗물로 6만6000㎡ (2만여평)의 논을 경작했다. 1966년 경인고속도로 공사로 인해 마을 저수지가 메워졌다. 졸지에 그들은 농업용수를 잃었다. 논농사를 포기해야 했지만 그들에게는 또 다른 물이 있었다. 김포정수장에서 인천으로 가는 송수관이 이 마을을 지나갔다. 여기서 새나오는 물이 들판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인천 시민이 마실 '피 같은' 물이었다.

일제 말 1944년에 설치된 낡은 송수관 곳곳이 본격적으로 새기 시작한 것이다. 인천시 수도국 직원들은 정기적으로 현장에 나가 벌어진 틈을 콘크리트로 때우거나 구멍을 말뚝으로 막아놓았다. 이런 땜빵은 별 소용이 없었다. 높은 수압을 이겨 내지 못하고 물이 철철 새나갔다. 물 솟는 곳에 물웅덩이 까지 생겨 마을 아이들이 멱 감을 정도였다. 농민들은 아예 말뚝을 뺐다 닫았다하면서 마치 수도꼭지 틀듯 자유자재로 논물을 댔다. 심한 가뭄으로 이웃 마을들이 모내기를 못할 때도 저수지도 없는 이 마을은 물 걱정 없이 제때에 마쳤다. 매년 식수난으로 인천시민의 수도꼭지는 말라붙었지만 부천 성지동 마을 농부들은 십 수 년 간 인천 수돗물로 일군 옥답에서 흥겨운 풍년가를 불렀다. 인천 입장에서 보면 '죽 쒀서 개 준 꼴'이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인천은 수도권쓰레기매립지, 화력발전소, 인천항벌크화물부두, 송도LNG기지, 경인고속도로 등 서울 등 주변 도시를 위해 쑨 '죽'이 한두 그릇이 아니다. 이제라도 '비지죽 먹고 수염 쓰는' 허세가 아니라 진정 '인천 주권' 행정에 누수(漏水)가 없는지 꼼꼼히 살펴봐야한다. 고마운 비가 오려나. 서쪽 하늘에 구름 한 조각 걸려 있다.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