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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원의 사람냄새] 보이콧 대위의 교훈   

2017년 06월 20일 00:05 화요일
보이콧(boycott)이란 말은 "부당한 행위에 대항하기 위하여 노동자·농민 등 대중이 집단적으로 벌이는 조직적인 거부 운동"을 뜻하는 말이지만, 본래는 사람의 이름이었다. 찰스 커닝엄 보이콧(Charles Cunningham Boycott, 1832~1897)은 영국 육군 대위로 전역한 뒤 1873년 아일랜드 메이요 주 일대 언(Erne) 백작령의 영지관리인이 되었다.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의 주된 산업은 농업이었다. 당시 아일랜드의 주식은 감자였는데, 1845년부터 1851년까지 계속된 감자마름병으로 엄청난 기근을 경험한 뒤였다. 1879년에 또다시 기근 사태가 발생했지만, 보이콧은 가난한 농민들이 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소작료를 체납한 농민들을 토지에서 강제로 퇴거시키려 들었다. 하원의원이자 아일랜드 민족주의 운동가였던 파넬(Charles Stewart Parnell, 1846~1891)은 농민들과 함께 '토지연맹(Land League)'을 결성해 소작인들을 단합시켰다.

토지연맹은 처음에 소작료 25% 경감이란 온건한 조건을 제시했지만, 냉정하고 완고한 성품의 보이콧은 이를 거부했고, 1880년 9월 마침내 강제퇴거 영장을 발부했다. 토지연맹과 농민들은 보이콧과의 대화는 물론, 임차인들에 대한 저임금, 고율의 소작료 납부를 거부하는 비폭력저항운동을 벌였다. 보이콧은 자신이 관리하던 영지에 갇혀 식량보급과 통신망조차 끊기는 고립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그는 얼스터에서 파견된 군대의 경호를 받으며 50명의 인부를 동원해 무사히 수확을 마칠 수 있었지만, 농민들의 '보이콧'으로 결국 자신이 관리하던 영지에서 퇴출당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보이콧은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남기게 되었고, 토지연맹은 이후 아일랜드의 토지는 지주 보상제를 통해 농민에게 귀속되어야 한다는 경제투쟁과 더불어 자치권 운동으로 성장해나갔다. 보이콧의 사례는 정치의 의미에 관한 교훈을 선사한다. 정치란 의견과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입장 사이에서 협력을 구하는 사회적 활동이며, 강제나 노골적인 힘이 아니라 타협, 화해, 협상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는 특별한 수단이다. 정당한 명분과 타협의 노력 없이 갈등만을 심화시킨다면 보이콧 대위의 교훈에서 알 수 있듯 보이콧 당할 수 있다.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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