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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 무언의 절규에 관객은 눈물로 '화답'했다

1945 일본·2004 이라크·2010 인천 …
시·공간 다른 4가지 에피소드 하나로
피해·가해자, 군·민간인 등 '1인 다역'
"연결돼 있다" 메시지 심어 '비극' 강조

2017년 06월 19일 00:05 월요일
"군인들 너무 불쌍해. 누굴 위해 도대체 왜 죽어야 하는 거야?"

몇 년 후 자신들의 모습이라고 예감한 남학생들은 연극 시작 전 설렘으로 가득 찼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표정으로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란 제목과 생동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삭막한 표정의 포스터로부터 짐작할 수 있었지만 막이 오르고 110분 동안 극은 군인을 넘어, 국민이 불쌍하다는 메시지를 다시 한 번 던져줬다.

박근형 연출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16일 오후 인천문화예술회관 무대에 올랐다. 분위기 고조를 위해 시작 10분 전부터 '차렷, 총' 자세를 한 8명의 군인이 무표정으로 무대 앞에 서서 관객들을 검문하듯 훑어봤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정다운 목소리 귓가에 와서 멎는다, 떠나올 때 손 흔들며 짖던 그 미소 별빛 속에 아른거린다' 송창식의 경쾌하지만 애잔한 노랫말의 '병사의 향수'가 흘러나오며 조명이 켜 졌다.

2016년 한국 경남에서 전역을 한 달 앞둔 병장이 군대의 규율과 강압을 이기지 못한 채 탈영하는 '이원재'와 1945년 지배국이던 일본을 위해 몸에 폭탄을 단 자살특공대 가미카제를 선택한 조선인 '마사키(동철)', 2004년 이라크에서 납치와 살인을 반복하는 무장단체에게 인질로 잡힌 일반인 '서동철', 2010년 서해 백령도 부근에서 갑작스런 포격으로 죽음을 맞이한 초계함 선원들이 등장한다.

전혀 다른 시·공간에서의 에피소드는 한 부분씩 펼쳐진 뒤 다른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형식으로, 서로 아무 연관 없는 이야기들처럼 보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극중 인물 모두가 하나로 겹쳐지면서 주제는 '살고 싶다'는 절규로 모아진다.

전형적 군인상에서 벗어난 인물이 극을 끌고 가는 것도 흥미롭다. '초계함'에서는 승선 장병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안 이병의, '이라크'에서는 군인은 아니지만 식품을 납품하는 민간인 서동철의 시선으로 당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히 '초계함'에서 같은 인물·대사로 진행되는 평범한 면담시간 장면이 중복되지만, 이는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의 기억을 되살리는 무의식의 공간이었다는 반전에서 관객들은 생존자의 눈으로 사건을 되짚는다. 그들의 표정과 손짓은 오히려 직접적으로 내뱉는 대사보다도 울분과 절규를 여실히 보여줘 관객 모두를 '군인'으로 만들었다.

"살려주세요!" 1945년부터 7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국가주의와 애국이라는 보이지 않는 폭력에 억압받는 그들의 절규는 피해자와 가해자 구분 없이 모두가 전쟁터에 내던져진 우리의 비극을 강조한다.

몇몇 캐릭터 빼고는 배우 대부분 1인 다역으로 연기하는 설정 역시 각기 다른 시·공간을 살아가는 이들이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치로 볼 수 있다.

공연 중간 중간 잠깐의 적막이 찾아오는 순간은 수많은 엄마들의 훌쩍거림으로 채워졌다. '국가 간 전쟁과 시스템 속에서 자의 또는 타의적으로 강요받는 군인들의 죽음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며, 죽음의 순간에 섬광처럼 스치는 기억에 공감하길 바란다'는 박근형 연출가의 메시지가 통한 게 아닐까.

이 작품은 지난해 말 '제53회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수상한 데 이어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2016 올해의 연극베스트3', 월간 '한국연극'이 선정하는 '2016 올해의 공연베스트7' 등에 이름을 올린 경력만큼, 지난 16~17일 인천에서의 3차례의 공연 모두 역대 기획 공연 중 가장 높은 유료판매율을 기록했다.

/송유진 기자 uzin@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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