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집값 '62억원 vs 3억원'…공공재 관리부실 노출
노동당, 공공지출 억제하는 보수당 긴축정책 맹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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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최소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런던 그렌펠 타워 화재의 불똥이 영국의 양극화 사회 논란으로 튀는 형국이다.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재에 대한 부실관리가 참변을 불렀다는 비판 속에 화재 지역의 빈부격차가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15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은 그렌펠 타워가 있는 켄싱턴·첼시 자치구가 런던에서 가장 불평등한 지역 중 하나이며, 극단적인 빈곤과 부과 공존한다고 보도했다.

1974년 지역 당국의 재원으로 마련된 공공 임대주택인 그렌펠 타워와 그 주변 지역은 이민자와 저소득 계층이 주로 거주하는 서민 구역이다. 이 일대는 2015년 영국에서 가장 궁핍한 지역 10% 안에 들었다.

하지만 북켄싱턴에서 동남쪽으로 조금만 이동하면 영국에서도 부유하기로 소문난 동네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이 동네의 테라스식 주택의 평균 가격은 430만파운드(약 62억원)였다. 최근 부동산 사이트에 매물로 나온 그렌펠 타워의 침실 2개짜리 아파트의 가격이 25만 파운드(약 3억5천만원)였던 점을 고려하면 그 격차를 실감할 수 있다.

일대 주민의 2014∼2015년 인당 평균 소득세도 5만1천파운드(약 7천354만원)에 달했다. 영국 왕실에서 사용하는 켄싱턴 궁도 이 지역에 있다.

북켄싱턴의 저소득층 주민들은 이번 참사로 빈부격차를 더 뼈저리게 느끼며 분노하고 있다.

이들은 그간 보수당이 장악한 지역 당국이 부유층의 취향에 맞는 정책을 펴느라 가난한 동네의 안전과 복지 문제를 게을리했다고 지적한다.

그렌펠 타워에 살던 알리아 알-가바니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그렌펠 타워가 반대편 비싼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흉물스럽다는 이유로 타워를 리모델링했다"며 "정말 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최근까지 이 지역을 포함한 선거구를 계속 장악해온 보수당이 펼쳐온 긴축 정책도 역풍을 맞고 있다.

아나벨 도널드는 "지역 당국은 불필요하게 세금을 낮게 유지해 왔다"며 "세수를 늘려 공공 주택이나 다른 공공 서비스에 쓸 수도 있었다"고 강조했다.

부유한 동네에 사는 그는 "기쁜 마음으로 지역 세금을 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공 임대주택인 그렌펠 타워가 적은 예산 때문에 부실하게 관리됐다는 지적은 영국 시민들의 화를 북돋고 있다.

현재 참변 경위를 둘러싸고 미관 개선을 위해 사용된 싸구려 외장재가 더 큰 피해를 불렀다는 분석, 이를 우려하는 주민의 목소리를 당국이 외면한 정황, 스크링클러나 화재경보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진술 등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야당인 노동당은 연일 보수당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보수당 정부의 지방당국에 대한 공공 예산 지원 삭감이 이런 참사를 빚은 배경이라고 비난했다.

지난 총선에서 이 지역구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당 배지를 달고 당선된 에마 덴트 코드 의원도 "지역 당국이 그렌펠 타워 주민들이 수차례 제기한 민원을 듣기만 했더라도 이번 화재는 예방 가능했을 것"이라며 보수당을 비판했다.

코드 의원은 젠트리피케이션(원주민과 상인이 다른 지역으로 밀려나는 현상)과 관련한 이슈를 중심으로 선거 운동을 했으며, 불과 20표 차이로 의석을 차지했다.

마거릿 대체 정부의 출범과 함께 1980년대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친 영국은 현재 빈부격차가 세계에서 가장 큰 국가 가운데 하나다.

작년 9월 자선단체 옥스팜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상위 1% 63만명이 하위 20% 1천300만명보다 20배 많은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작년 6월 예상을 뒤집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가 가결된 배경에도 어떤 변화라도 나은 선택이르는 저소득자들의 좌절감이 자리를 잡고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 조기총선을 앞두고 메이 총리는 노령층 돌봄 서비스를 축소하는 등의 공공지출 축소 방안을 밝혔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고 참패를 당했다.

현재 영국에서는 공공재 관리부실 사례로 꼽히는 테러, 이번 화재, 총선 참패를 계기로 위기를 맞은 보수당 정권이 긴축정책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