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광 김포청소년육성재단 상임이사 공직 은퇴
올곧음·절제·겸손함 갖춰 '정통 행정관료'로 불려
"임명장(任命狀)의 任은 '맡길 임'이며, 命은 '목숨 명'자입니다."

27일 (재)김포시청소년육성재단을 떠나 38년 만에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임종광(59)상임이사가 후배 공직자들에게 들려주는 고언이다.

25살의 나이에 공직에 들어와 35년, 2014년 8월 공모를 통해 청소년육성재단에 몸담은 지 3년.

38년간 청춘을 바쳐 김포시민을 위해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 그는 누가 뭐래도 착하고 순한 올곧은 공직자로 정평이 나 있다.

학교 다닐 때 글쓰기를 좋아해 문학청년이었던 그가 시험에 합격한 서울대 진학을 포기하고 공무원의 길을 택한 것은 경찰공무원이었던 아버지와 김포읍장으로 김포군수 선거에 출마했던 작은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다.

임 상임이사는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당시 김포군청 공직자였던 작은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어릴 때 기억이지만 두 분이 다른 직업이지만 한 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본 적이 없었어요, 당시만 해도 공무원이 박봉이었는데도 힘든 내색도 하지 않았어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공직자란 자부심을 두 분에게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공직생활은 그가 꿈꿔왔던 것과는 큰 차이가 컸다.

쌀농사가 많았던 김포지역 특성상 당시만 해도 공무원들은 허구헛날 농촌지원과 지붕개량, 도로공사에 동원됐다. 머리가 아닌 힘과 목소리로 행정을 펼칠 때였지만 그는 불평하지 않았다.

"중국속담에 관직에 있는 사람은 백성을 사랑하지 않으면 무관을 쓴 도둑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 중심에 누가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는 시민이 누구인지를 알며 왜 그들을 중심에 두고 살아야 하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공직자의 인생이라고 한다.

관선시대가 끝나고 민선시대에 들어서면서 그에게도 여러 번의 부침이 있었다.

주변의 시기하는 눈과 쏟아지는 민원들.

하지만 절제와 겸손, 그리고 자신을 바로 세우기 위한 스스로를 향한 채찍질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에게는 말이 아닌 실천으로 보이는 부끄럽지 않은 '정통 행정관료'란 수식어를 따라 붙게 했다.

뒤따르는 후배들을 위해 35년간의 공직을 떠나 청소년육성재단으로 옮기고서도 그의 몸에 밴 최선을 다함으로서 얻는 가치를 최대한 이뤄 내려는 '대가 없는 봉사' 자세는 이어졌다.

"인생은 밑질 때도 있다"는 그가 청소년육성재단을 맡으면서 김포시청소년육성재단의 위상도 크게 높아졌다.

김포시 진로교육지원체계 구축과 진로교육 거리 꿈터 조성, 진로 진학박람회, 고교 대학 입시 설명회, 일대일 매칭 프로그램 꿈 이룸 프로젝트 등 헤아릴 수 없는 청소년들의 프로그램 개발도 이 중 하나다.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 올 그의 화두는 '공직사회가 시민들의 자긍심을 어떻게 고취할 것 인가'다. 새 출발선에 선 그는 여전히 김포공직자다.

/김포=권용국 기자 ykkwu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