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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현장서 춤추는 남자 … 다큐 영화 '바람의 춤꾼'

리뷰 / 세계 곳곳서 '위령무'로 한국역사의 아픔 달래 … 이삼헌씨 15년 기록

2017년 06월 09일 00:05 금요일
작고 왜소한 중년의 한 남성이 있다. 1980년대 이후 한국의 아픈 역사 현장엔 늘 이 남성이 있다. 현장에서 만큼은 누구보다 크고 결연한 표정의 그는 맨발로 시민 앞에 선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양팔을 곧게 뻗으며 화려하진 않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춤사위를 펼친다. 거리의 춤꾼,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위 현장의 춤꾼, 이삼헌씨의 이야기다.

영화 '바람의 춤꾼'은 발레리노를 꿈꾸던 한 학생이 1980년대 암울한 정치 상황으로 인해 시위 현장에서 춤으로 아픔을 표현해내는 이야기를 그린 다큐멘터리다. 그의 친구이자 영화 감독인 최상진씨는 2002년부터 그의 인생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그의 춤꾼 인생 중 15년을 한 편의 영화로 담았다.

청소년기 광주학살을 목격한 후 그 충격으로 공황장애를 앓게 된 이씨. "피 비릿내가 역겹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는 그는 화려한 무대를 포기하고 시위현장에서 춤을 추기로 한다.

2002년, 전 세계가 월드컵에 열광할 때 이씨는 미군 장갑차에 치어 숨진 두 소녀를 위로했다. 2009년 용산 참사, 1991년 의문의 죽음을 당했던 노동자 박창수 열사의 추모대회에서도 국화꽃을 벗 삼아 작지만 진심을 담은 몸짓으로 함께 했다.

2014년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샤먼축제에 진혼무를 추는 한국 전통무용가로 초대받아 영을 기렸다. 극심한 공황장애로 기차는커녕 고속버스조차 큰 맘 먹고 타야하는 그였다.

비행기를 탈 수 없던 그는 동해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배로 간 뒤, 유라시아 횡단열차를 타고 파리로 갔다. 비행기로 18시간이면 갈 거리를 꼬박 20일이나 걸려 간 것.

하지만 가는 도중에도 중앙아시아에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과 나치에 희생된 유대인들을 위해 곳곳에서 진혼춤을 췄다.

먼 이국땅에서 들은 세월호 비보에는 슬픔을 머금은 채 위령무를 췄다.

"여러분들은 불법 집회 중입니다. 지금 즉시 해산하십시오." 세월호 참사 이후 경찰의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진 4·16 문화행동 집회에서도 그는 귀를 닫고 시민들과 몸으로 함께 외치고 울었다. 새파란 바닷물에서 노란 종이배를 입으로 소중히 건져 가슴으로 끌어안으며 절규하는 그의 몸짓은 유족과 전 국민의 가슴을 적셨다.

이렇듯 이씨의 30년 춤 인생엔 질곡 많은 한국의 현대사가 켜켜이 쌓여있다. 아픔이 서린 곳은 어디든 그의 무대였고, 반평생 넘도록 시대의 아픔을 몸으로 표현해왔다.

그의 굴곡진 인생을 닮은 걸까, '바람의 춤꾼' 역시 만만치 않은 난관에 부딪혔다. 세월호 추모나 탄핵 촛불 집회 등이 담겨 박근혜 정부 때는 개봉이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 컸던 데다가 장장 15년의 제작기간 동안 이를 뒷받침해줄 제작 여건이 부족했다.

그런 극을 위해 나선 건 이씨를 응원하는 후원자들이었다. 그들의 도움의 손길이 커져 영화진흥위원회 다양성영화 개봉 지원작, 독립영화 후반작업 기술지원작으로 선정돼 마침내 관객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처럼 '바람의 춤꾼'은 30년 넘게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표현해 온 이씨의 인생스토리를 통해 한국 사회의 서글픈 자화상과 민주화를 이뤄내기 위한 치열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의 역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송유진 기자 uzin@incheonilbo.com






부평 대한극장 관객과의 대화 "촛불의 힘으로 상영 … 사회의 그늘진 이면에 관심을"



7일 오후 8시30분 인천 부평 대한극장에서 영화 '바람의 춤꾼'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됐다. 이날 최상진 감독과 이삼헌, 그의 선배이자 해외 여정을 함께 한 변우균, 영화 제작자 박미경 대표, 박 대표와 과거 작품으로 끈끈한 인연을 잇고 있는 배우 권민중, 최 감독과 타 프로그램을 함께한 시인 신현림이 참석했다.
이삼헌씨는 "내 이야기와 모두의 아픔을 담아 춤춘 게 어느덧 30년이 됐다"며 "아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몸짓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무릎도 너무 아프고 가끔은 예쁜 분장도 하고 멋진 무대에도 서 보고 싶다"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15년의 대장정을 마치고 하필이면 지금 시점에 개봉한 이유를 묻자 최 감독은 간결하고도 시원하게 대답했다.
그는 "계속 찍을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거라 생각했다"면서 "촛불의 힘이 없었다면 아직까지도 스크린에 상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삼헌이가 아픈 춤은 그만 추고 이제는 신명나는 춤을 추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제작팀은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샤먼축제에 임하던 중 세월호 참사를 전해 들었을 때의 고뇌와 내적 갈등도 상당했다고 했다.
최 감독은 "사실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일이라 축제를 하고 이런 내용의 영화를 촬영한다는 자체가 이율배반적인 행위라고 생각해 갈등이 컸다"면서도 "하지만 멀리서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았고, 많은 외국인들과 아픔을 함께하며 기도해 스스로를 달랬다"고 말했다.
"영화를 통해 현 사회의 그늘진 곳, 보이지 않는 곳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보여준 '시위 현장의 춤꾼' 이씨가 담담하지만 힘주어 말했다.
영화 속에서 온 힘을 다해 추는 그의 춤은 백 마디 위로보다 강렬했다. 그의 애달픈 독무는 힘든 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따뜻하게 위로한다. 이제는 슬픈 춤 대신 신명나는 몸짓으로 많은 이들의 기쁨을 함께 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글·사진 송유진 기자 uzin@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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