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고통하는 법을 익히기 시작해야겠다./ 이제 밝아 올 아침의 자유로운 새소리를 듣기 위하여/ 따스한 햇살과 바람과 라일락 꽃 향기를 맡기 위하여/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를 사랑한다는 한마디/ 새벽 편지를 쓰기 위하여/ 새벽에 깨어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 희망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다. - 곽재구 시인의 시 <새벽 편지> 일부
지난 토요일 디아스포라 영화제가 열리는 아트플랫폼을 찾았다. 시간표를 보니 다큐멘터리 영화 <꿈의 제국>, 퀴어 영화 <문 라이트>를 보면 좋을 듯싶었다.

<꿈의 제국>은 중국에서 아파트 건설 붐이 일 때, 아파트를 고급스럽게 보이려고 외국인들로 하여금 연주도 하고 모델도 서게 하면서 마치 유럽의 어디쯤에 와 있는 착각을 불러 일으켜 매매를 성사시키는 광고 기획을 하는 여성의 삶을 다룬 영화였다.

<문 라이트>는 퀴어 영화, 즉 동성애를 다룬 영화라고 되어 있지만, 동성애보다는 한 흑인 아이가 성장해가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정체성에는 성도 포함한다.
자신 역시 방 한 칸 제대로 갖지 못했으면서도 어떻게든 성공하기 위해 아파트를 사려는 사람들을 현혹시켜야 했던 야나의 삶, 마약을 하는 엄마와 따돌림을 하는 아이들 속에서 견뎌야 했던 샤이론의 성장. 두 영화는 하려는 이야기를 필름에 담는 방식부터 영상, 화법까지 전혀 다른 영화였다. 그러나 두 영화는 공히 '나는 누구인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를 묻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어느새 어둑어둑해졌다. 개항기 창고 건물을 개조한 아트플랫폼을 새삼스레 바라보았다. 개항기, 전국에서 일거리를 찾아, 먹고 살기 위해 인천으로 찾아들던 우리 모두는 디아스포라였다. 그러니 다른 영화제도 아니고 디아스포라 영화제가 인천, 그것도 개항장이 있는 중구에서 열리는 것이야말로 최적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 때는 터덜터덜 왔는데 영화의 잔상이 남아 어쩐지 무거운 화두를 짊어지고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