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그들이 십정동을 선택한 이유는 …
▲ <마을공동체 운동의 원형을 찾아서> 빈민지역운동사 발간위원회 한울 496쪽, 3만6000원
가장 낮은 곳에서 연대하며 더불어 사는 삶 … 부평지역 활동가들의 이야기

우리나라에서 민주화운동이 무르익던 1980년대 중반, 인천 동구 만석동에서의 빈민운동과 철거를 겪은 활동가들은 부평구 십정동으로 들어온다. 십정동에서 주민 지도자를 세우고 그들을 통해 주민운동을 하겠다는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그들이 십정동을 선택하고 공부방을 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십정동 산동네는 1960년대 이후 이농민들의 마지막 정착지이자 1970년대 말 조성된 주안5공단 배후지다. 주민들은 대부분 이농민 출신의 일용 건설 노동자와 공단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젊은 노동자 가족으로 우리 사회의 생산 주역이면서도 배분에서 소외된 계층이다… 중략 … 어떤 방법이 그들을 주체적인 삶의 주인이 되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인가? 그들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하며 공동체화돼야 한다. 빈민지역에서 그런 것을 비교적 쉽고 빠르게 취할 수 있게 하는 고리 중의 하나가 공부방이다.'(434쪽)

새책 <마을공동체 운동의 원형을 찾아서>(한울·496쪽)는 가장 낮은 곳에서 연대하며 일어선 마을 사람들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은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삶을 이야기 하고 있다.

'국가나 사회를 구성하는 일반 국민'을 뜻하는 민중은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격동의 세월을 살며 눈앞에 닥친 고민의 빗장을 풀어헤쳐왔다.

하루 살아가기에 급급한 가난한 사람들은 군사정권 아래서, 경제성장 위주의 재개발 정책에 치이면서 삶의 터전을 지켜내기 위해 연대한다. 수도권에서 강제로 밀려난 이농민의 집은 '무허가 불량 주택'이라 불렸으며, 부당함을 소리친 주민들은 '폭도'로 묘사됐다.

이 책은 운동적 사건에 관한 '사실'보다는 조직 활동을 한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인천 부평의 이야기를 비롯해 1970년대부터 2000년 이전까지 수도권 일곱 개 지역에서 활동한 운동가들이 민중의 마을에서 어떤 일상과 마주쳤는지, 또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 내면을 들어다본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절박했던 현실과 마주한 주민이 써 내려간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도시의 저소득층 주민을 주체로 세우려는 사회운동에서는 일찍이 1970년대부터 '운동가는 운동가이기 전에 한 사람의 주민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수립했다.

이들은 스스로 노동자의 삶을 살면서 역사에서 배제된 민중의 자리를 되돌려주기 위해 철저히 주민의 편에 섰다. 주민과 함께 살며 그곳 주민으로 노동자 야학을 여는가 하면 의대생과 자원 봉사자를 모아 진료소를 운영하기도 했다. 또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청소년 노동자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으며, 긴급 생활 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서민금고를 마련하기도 했다. 때론 함께 모여 천연 화장품을 만들고, 국수모임을 만들어 일상을 함께 나누었으며, 가난한 동네 주민을 대상으로 한 반강제식 복강경 수술 문제를 세간에 널리 알리기도 했다.

이 책은 마을공동체의 '원형'은 무엇을 목적으로 주민의 삶에 의도적으로 개입해 이들의 의식을 깨치려 하기보다, 주민 스스로 하는 일을 함께하며 '그냥 산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이런 원칙을 거듭 새기며 온전히 마을 사람으로 동화되기까지 일상에서 마주했던 성공과 실패, 그러면서 얻은 교훈과 회환 등을 담아냈다.

빈민지역운동사 발간위원회 지음, 3만6000원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