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다방 -허은희-

동인천역 광장을 돌아
지하상가를 건너 대한서림을 지나면
백 원짜리 동전 세 개에 반나절을 기댈 수 있는 곳

삼십년 전에 지워진 당신의 커피잔
아직도 도착하지 못한 새끼손가락

삼백 원짜리 커피가 기다리는
약속다방엔 약속이 살아 있다


삼백원으로 커피를 마시던 그 옛날의 약속다방. 1950년대에 처음 문을 연 대한서림은 7~80년대 사람들의 주요한 약속 장소였다. 동인천역 광장을 돌아 지하상가를 건너면 나타나게 되는 대한서림. 특별한 약속 장소를 정할 필요도 위치를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이 그저 대한서림으로 다 통하던 시대가 있었다. 30년 전에 있었던 당신의 약속. 당신의 새끼손가락을 기다리던 약속다방. 그러나 "삼십년 전에 지워진 당신의 커피잔". 아직도 당신의 새끼손가락은 도착하지 못하고 있다.

그 옛날 핸드폰이 없던 시절엔 시간과 약속장소를 정하면 그것으로 다였다. 그/그녀가 어디까지 왔는지, 언제쯤 도착하는지, 약속시간에 늦게 되는지, 혹 올 수 없게 되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저 기다릴 뿐. 10분, 30분, 1시간. 그저 약속한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한참을 기다리다 오지 않으면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아쉬워하며 약속 장소를 떠나야 했던. 그 시절 약속다방. 

그곳에 남겨진 무수한 약속들은 아직도 살아있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이 거리를 스쳐 지나가지만 그들이 남겨놓은 약속들은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다. 나의 마음 속에는 그/그녀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지금도 그 앞을 스쳐 지날 때 만나지 못한 그/그녀를 만나게 될 것만 같은 그곳. 그 시절 약속은 살아있다. 

/권경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