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수 경기본사 사회부장
문화계의 두 거장(巨匠)이 수원을 떠난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는 한국 문단의 원로이자 우리 문화계의 큰 별인 고은 시인과 또 한명은 김대진(55) 수원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다. 수원을 예술인문도시로 위상을 높인 원로 문학인과 세계적인 지휘자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한꺼번에 수원을 떠나기로 해 그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떠오르면서 팔순의 나이에도 열정적인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는 고은 시인은 최근 광교산 비상 식수원 해제를 놓고 수원시와 갈등을 빚어온 광교 주민들로부터 난데없는 퇴거 요구를 받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랫동안 한 교향악단에 머문 상임지휘자로 기록된 김대진 수원시향 예술감독은 단원과의 갈등으로 갑작스럽게 사표를 내면서 수원시가 또다시 발칵 뒤집혔다.
두 거장의 수원 퇴거 결정에 문화예술인의 분노와 허탈감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지역과 조직 이기주의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 노벨상 후보자를 굴러온 '돌' 대접하는 수원
지난 4년간 지역 이기주의는 세계적인 문호 고은 시인을 괴롭혔다.

2015년 12월 쯤 한국문인협회 수원지부는 수원시의 고은문학관 건립추진에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본격적인 갈등을 빚는다. 고은 시인이 30년 넘게 작품 활동을 해온 안성을 떠나 수원에 정착한지 3년 쯤 일이다. 당시 수원문인들은 성명서에 지역 연고도 없는 '굴러온 돌'인 고은 시인의 이름을 딴 문학관을 건립할 필요가 있느냐며 지역 문인들을 더 챙기라는 식의 주문을 했다. 다행히 올 2월 수원문인협회가 고은문학관 건립반대 자진철회를 하면서 갈등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5월 중순 고은 시인은 이웃한 광교산 주민들로부터 "광교산을 떠나라"는 요구를 받으며 큰 상처를 입었다. 고은 시인은 주민들이 한국 문학계 원로에 대한 예우를 철회하라는 요구에 모든 것을 놓고 떠나고 싶었을 것이다. 고은 시인은 최근 광교 식수원해제를 요구하는 주민들의 집 앞 퇴거 시위에 친한 문인 몇몇 사람에게 "수원시가 골치 아픈 곳이다"라고 말하며 힘들어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 주민들의 푸대접에 고은 시인의 고향인 전북 군산에서 "수원에서 그런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된다. 고은 시인을 고향으로 모셔오자"는 여론이 만들어지고 있다. 후배 문화예술인들의 청원운동도 만류한 상태다.

# 김대진… 금난새까지 수원시향 '굴욕' 역사
최근 김대진 수원시향 상임지휘자가 사표를 내자 수원시 내부에서 '전임 시장이 뽑은 인물'론이 달아올랐다. 전임 시장이 뽑아서 실력이 없다는 것인지, 전임 시장이 선임한 지휘자가 너무 오래 지휘봉을 잡고 있다는 뜻인지 불분명하지만 삐뚤어진 지역 우선주의는 문화를 정치적 잣대로 해석해 김대진 상임지휘자를 괴롭혔을 것이다.

김대진 감독이 지난 9년간 시향을 이끌며 미국 카네기홀 전석 매진 등 해외 초청공연과 여러 음악상 수상 등의 성과는 무력화됐다. 지난 1999년에도 수원시향은 4대 지휘자로 7년여 간 활동해온 금난새씨를 단원과 갈등의 이유로 사퇴시켰다. 당시 금난새 지휘자는 개인적으로 체임버오케스트라를 운영하며 단원들 사이에 갈등을 빚고 외부 출연료를 시에 입금하지 않았다는 의혹으로 시립예술단운영위로부터 사퇴 권고를 받았다.수원시향은 다음 달 26일 수원 자매도시인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연주를 하기로 돼있다. 하지만 김대진 상임지휘자의 돌연 사퇴로 연주회는 불투명해졌다.

# 문화예술인이 대접받는 사회가 되길
김대진 수원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의 사퇴와 고은 시인에 대한 광교산 주민들의 퇴거운동으로 '예술인문도시'를 표방하는 수원시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국민의 문화생활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공헌한 예술인에 대한 대접을 특혜로 몰아붙이는 현실을 보면 암울하다.

예술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자긍심마저 지닐 수 없는 현실의 절망감은 자본 신봉주의가 그려낸 우리사회의 초상이다.

예술인의 지위를 세우는 출발점은 창작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조성에서부터 신진예술인의 양성, 예술 인력 수급과 같은 근본적으로 예술가를 지원·양성하는 실질적인 사회적 기반과 문화예술을 존중하는 시민들의 의식에서 시작된다. 이는 정부, 지자체와 국민, 문화계가 함께 만들어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