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인이 수난을 겪고 있다. 주민들은 수원에서 "떠나라"고 요구하고 시인은 "떠나겠다"고 밝혔다.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운 이 민망한 광경은 광교산 상수원보호구역(비상취수원) 해제를 놓고 갈등을 빚던 시와 주민들의 마찰에서 비롯됐다. 광교산 주민들에게 상수원보호구역 해제는 오랜 숙원이었다. 음식점 허가 하나 나지 않는다. 주민들의 상당수는 불법으로 음식점을 운영하다 전과자가 되기도 했다. 올 들어 때마침 수원시가 상수원보호구역 해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주민들은 기대에 환호했다. 그러나 시의 이런 방침은 환경단체와 환경부의 제동으로 다시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민들의 원망은 엉뚱하게도 옆집에 사는 시인을 향해 튀었다. 시인의 자택 앞에 무려 15일 간의 집회신고를 하고 21일 첫 집회를 열었다. 주민 70~80여 명이 모였고, 시인을 모욕하는 대형 펼침막도 내걸었다.

주민들은 상수원보호구역 규제 때문에 이행강제금과 벌금 등 고초를 겪고 있는데 시인에게만 주택을 제공하는 등의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며 시를 비난한다. 시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실상 시인을 볼모로 잡은 셈이다. 시인이 겪은 수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3년, 여생을 수원에 정착해 작품 활동을 해달라는 시의 요청을 받아들여 수원시민이 된 직후에도 지역문인들의 거친 항의를 견뎌야 했다. 지역문단의 창작활동 기반은 열악한데 시인에게만 과도한 지원을 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이때도 시인은 '굴러들어온 돌' 취급을 받아야 했다.

차제에 몇 가지 의문을 풀기 위해 심각하게 돌아봤으면 한다. 문화예술에 대한 수원시민들의 콧대 높은 자존심과 자부심의 정체, 과연 허상이었던가. 혹여 시와 몇몇 지식인만의 인식을 시민들이 공유하고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건 아닐까. 다시금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마치 시인이 세금을 축내며 공짜로 살고 있다는 인식이 일부라도 있었던 것은 시가 세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행태도 옳지는 않다. 자신의 이익 앞에서는 시인이고 나발이고 없다는 식의 태도, 적어도 시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정녕 이런 모습이 우리사회의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을 대변하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