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 신장내과 전문의·인천환경운동연합 회원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해 화제가 됐다. 영화의 내용은 유부남 감독과 사랑에 빠진 여배우 영희가 사랑에 대해 고민하며 함부르크와 강릉을 오가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여배우 김민희와 홍 감독의 사생활이 논란이 됐다. 하지만, 진짜 사랑을 갈망하는 영화의 주제와 김민희의 명연기는 세계적인 영화제에서의 수상으로 그 가치가 증명됐다. 가짜가 아닌 진짜 사랑, 일생에 한번 찾아올지도 안 올지도 모를 그런 사랑에 여주인공은 모든 것을 걸겠다고 말한다. 진실한것, 순수한 것에 대한 갈망은 인간의 본능이다.

자 여기, 가짜가 아닌 진짜 바다, 마지막으로 남은 진짜 인천바다가 있다. 너무도 위태로운 운명 앞에 놓인 진짜 바다를 여러분에게 소개한다.

필자의 고향은 부산이다. 바다라면 어릴 적부터 수도 없이 봐왔고, 풍광 좋은 태종대를 앞마당삼아 놀았기에 웬만한 바다는 한수 아래로 여길만큼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인천으로 이사오면서, 새로 살게 될 도시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있었다. 여기저기 찾아봐도 인천하면 명확하게 떠오르는 캐릭터가 없었다.

어릴적 고무줄 놀이하면서 부르던 노래 중에 "월미도 아름답고 꽃도 많구나"라는 가사가 떠오른다. 기대를 품고 찾아갔던 월미도는 너무 실망스러웠다. 월미도는 더 이상 꽃도 많지 않았고, 이제는 해안선 매립으로 더 이상 섬도 아니었다. 바다를 볼 수 있는 해안은 있었지만, 시멘트벽으로 단절된 대한민국의 흔한 기괴한 해안의 모습이었다. 바닷물만 있다고 바다가 아니다. 콘크리트에는 영혼이 없다. 콘크리트에는 미학이 없다. 유구한 시간이 만들어 냈을, 똥물이 넘쳤다는 서해 인천바다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역설적이게도 진짜 인천 바다를 만난 것은, 인천해양수산청의 북성포구 일대의 매립 계획이 본격 추진되면서 다급히 SNS에 올려진 문화예술인의 글 덕택이었다. 이제는 없어질지도 모를 인천의 마지막 남은 갯벌포구가 있다길래 찾아 나섰다. 물어물어 찾아가보니, 실망했던 월미도 바다와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곡물과 사료포대를 실은 화물트럭과 공장, 좁은 골목길을 지나 난데없이 나타난 포구.

펼쳐진 갯벌과 갯골을 보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왔다. 내가 상상했던 인천바다. 뻘 때문에 똥바다라고 오해도 받았던 인천 바다가 바로 거기 있었다. 검붉은 갯벌과 바다, 공장에서 나오는 연기, 물빠진 포구에 내려앉은 갈매기들. 개항기에 이양선이 저 갯골을 가르며 포구로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1884년 제물포 개항, 제물포는 당시 외국인들이 수도 서울을 방문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가야 했던 항구였다. 이런 역사적인 장소도 매립으로 사라져갔다. 이미 제물포는 항구가 아니다. 1894년 제물포를 경유해 서울로 온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묘사했던 '질퍽거리는 진흙 펄의 항구, 모래톱에 있는 좁은 도랑의 정박지, 조수가 11m나 오르내렸다'는 개항기 제물포의 모습을 여기 북성포구에서 상상해 볼 수 있다.

누군가는 여기에서 뛰놀며 망둥이를 잡았을 것이고, 누군가는 여기서 조개를 캤을 것이다. 이 땅의 주인들의 추억과 애환이 묻어있는 바다. 8000년간 이 땅의 흙으로 조성된 갯벌이 여기 있다. 우리보다 더 오래 묵묵히 숨쉬며 생명을 잉태하고, 바다를 정화하며 자신의 소임을 다 해 왔다.

이 아름다운 포구를 매립해 만들 콘크리트 땅의 이권을 지자체가 나눠먹기 하겠다는데, 우리는 몇몇 공무원들과 건설업자들의 배만 불릴 것이 뻔한 이 사업이 진행되게 지켜만 볼 수 없다. 누가 그들에게 우리 바다를 망칠 권리를 주었는가. 인천의 바다는 시민 모두가 공유하는 인천의 공공자산이다.

1991년 10월 유고 내전이 터졌을 때, 크로아티아의 역사도시 '두브로브니크'는 신유고 해군의 포격으로 도시가 파괴될 위험에 처했다. 프랑스의 학술원 회장 장 도르메송(당시 66세)은 프랑스 지식인 13명을 이끌고 범선 '크틸라 두브로브니크 호'를 타고 전쟁터로 달려갔다. "유럽 선진국들이 유럽 문명과 예술의 상징적 도시인 두브로브니크에 대한 포격 하나 중지시키지 못한 대서야 말이 되는가." 신유고 해군의 저지로 그는 현장에는 발도 디뎌보지 못하고 파리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프랑스 최고 지성의 이 한마디는 비중있게 언론에서 다루어졌다. 유네스코는 복구의 손길을 내밀었고, 비서구인들까지도 두브로브니크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인천의 지성인들이여, 이제 전쟁보다도 더 무서운 신자유주의의 물결, 탐욕의 손아귀에서 우리의 진짜 바다를 지켜 내자. 인천의 마지막 남은 갯벌포구, 북성포구마저 사라지면 인천의 근대역사, 자연유산을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가. 우리에게 남은 것이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