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진개문화마당 황금가지 대표

이웃 할머니와 다퉜다. 팔순을 바라보는 할머니랑 여명부터 백주까지 이어진 말다툼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고성이 오가고 막말이 허공을 검게 물들이더니 순식간에 물난리 난 것처럼 저자거리를 뜨악하고 냉랭하게 만들었다.

정치적 견해의 이질성이라든지 살아온 삶의 상관성 등에 따른 흔한 의견 차이로 비롯됐다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 날은 닥쳐올 미래의 어느 한 사건의 일부였고, 썰물처럼 흘러가버릴 과거 어느 날의 해프닝이었을 만큼 '모양 빠지는' 사소함 그 자체였다.

싸움의 발단은 물이었다. 오래전 일이지만, 물을 사용하는 업종이 많은 저자거리에 벽돌로 보도를 만드는 것을 평소 반대해 왔다. 벽돌을 보도로 깔기 위해서는 바닥을 훑어내고 모래를 쌓아 평탄작업을 한 후 그 위에 벽돌을 너부데데하게 깔아 놓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물청소를 한다든지 비가 내려 모래가 유실되면 벽돌 층간이 헐거워지거나 빈틈이 생겨 오가는 사람들의 바짓단에 고랑물이 튀거나 발목을 접질리는 사고가 종종 발생하는 단점이 있었다.

급기야 짐을 잔뜩 실은 스쿠터가 흥건하게 젖어 있는 할머니 가게 앞에서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늘 젖어 있고 물건을 늘어놓는 것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자, 당신이 40년 가까이 장사를 해왔지만 오늘따라 왜 그리 퉁명스럽냐는 핀잔이 뒤따랐다. 할머니가 깔끔하게 닦아놓거나 정리 정돈만 잘하면 될 것이라 운운하며 구포를 날리니, 어따 대고 막말이냐는 화구로 되돌아 왔다. 싸움에 고운 말 없고 찌푸리지 않을 인상이 없음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상황이 상황이었던 만치 노인네를 향해 육두문자를 직격으로 날린 건 아니지만, 고개 돌려 허사를 게워내듯 불거져 나온 쌍시옷 발음에 마음의 상처를 받았는지 일주일 넘도록 침묵이 이어졌다. 고단한 새벽 문을 두드리던 밝은 인사도 사라졌다. 하루에도 수 십 번 살갑게 눈빛을 주거니 받거니 지나다녔던 길목은 을씨년스럽고, 평소 배달 갈 때마다 가게를 봐주던 호의도 따라서 없어졌다. 게다가 당신의 자식들과 그 손자들, 노구를 이끌고 잠시잠깐 가게에 들르는 바깥어르신을 봐도 자연스레 외면해 버리고 말았다.

삼십년 가량 늘상 해왔던 인사치례가 한 순간에 먹통이 돼버린 거였다. 노인네한테 큰소리친 것이 내내 죄스러움으로 응어리져 있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이지만, 지옥이 있다면 이런 상황이 아닐까 짐작해보았다. 마음의 문이 닫히니 살아있어도 산 것 같지 않고 땀 흘려 일해도 개운치 않은, 황사 낀 오월의 허공처럼 찌뿌듯하고 답답한 나날이었다.

미국으로 이민 갔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지옥을 피해 왔는데 지옥에 도로 갔다는 말을 전했다. 조만간 미국도 허접스러운 탈을 벗어던질 조짐이 일고 있으니 기왕에 힘들여 간 거 안착하라는 말로 답했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몽키'나 '애시(Asian낮춤말)' 같은 소리는 듣지 않을 거고, 거리에서 불심검문 받는 일도 없을 거라고 했다. 좀 더 참으면, 그 흔하디흔한 스타벅스에 들어가서 콜 네임으로 YB(옐로우 바나나)를 써 내 웃음거리가 될 일도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덧붙여 촛불이 모여 일궈낸 사상 초유의 무혈 시민 혁명의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을 테니, 언제 시간 날 때 들르라 하고는 의기양양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럼에도.열흘이 지났다. 봄볕이 따갑게 내리 쬈다. 지구 표면을 직사하는 이상 열기도 무색하게 무거운 한랭전선은 여전히 골목 한 가운데 떡하니 걸쳐 있었다. 먼저 다가가 죄송했다고 말해 볼까. 어른한테 심한 말 했으니 용서해달라고 다음부턴 무엇을 해도 개의치 않을 테니 이번 일은 없던 일로 해달라고 두 손 싹싹 빌어볼까. 무엇을 궁리해도 뾰족한 수가 나오질 않았다. 평소 존경하던 동네 어른이 대만 학자 난화이진의 부처님 삼불능을 예로 들었던 것이 불현 듯 떠올랐다. 상대방이 마음을 닫고 있는데 화엄경이 뭐가 필요 있고 성경의 애가(愛歌)가 뭐에 약발이 듣는단 말인가. 절망적이었다. 아니, 지옥이었다.


남들은 저마다 낭만 정국에 즐거워하고 인간적이고 효율적이고 준비된 치국 살림에 감동하는데 설레발치듯, '나는 마음을 열어놨으니 당신도 마음을 여세요'라고 할 수는 없었다. 느닷없이 박카스 한 병이 눈앞에 밀려왔다. 아이스박스도 새로 교체했고 평생 마주보고 살아왔는데 이렇게 살 수는 없다며 꼬부랑 허리를 펴고 계셨다. 땅바닥에 무릎 꿇고 얼른 큰 절을 올렸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빨 몇 개 안 남은 보살의 미소에 뒷덜미가 들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