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산 상수원보호구역 해제 갈등 '불똥'…정착 4년 만에 심경 밝혀

한국 문단의 대표 시인인 고은(83) 시인이 수원에 정착한지 4년여 만에 주민들의 민원에 밀려 수원을 떠나겠다는 심경을 밝혀 파장이 일고 있다.

광교산 상수원보호구역(비상취수원) 해제를 놓고 수원시와 광교 주민들간 갈등이 커지면서 '불똥'이 엉뚱하게 고은 시인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23일 수원시, 지역인사 등에 따르면 최근 고은 시인은 문학계 지인 등을 통해 수원지역에서 더 이상 거주하기에는 어렵다는 착잡한 심경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시 복수 관계자는 "수원에 막상 이사를 와보니 지역 문학계의 반대 목소리가 이어졌고, 최근들어 상수원보호구역 문제로 광교 주민들이 '나가라' 하고 있어 개인적으로 큰 부담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며 "고은 시인은 창작을 하는 문학인인데, 현 상황에서 어느 문학인도 활동을 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고은 시인은 지난 2013년 여생을 수원에 정착해 작품활동을 해달라는 시의 요청을 승낙, 4년여 째 수원시민으로 살아왔다.

수원시는 '인문학 도시' 구축을 위해 수억원의 예산을 투입, 장안구 광교산 자락에 소재한 기존 주택을 리모델링해 고은 시인에게 제공하는 등 국내 문학계의 거목에 대한 예를 갖췄다.

하지만 지난해 말 수원시가 광교산 일대 상수원보호구역 해제 절차를 추진했다가 환경단체의 반대와 환경부에 제동이 걸리면서 해제를 요구한 광교주민들의 반발을 샀다.

애초 고은 시인과 마주하고 있는 인근 주민들은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인한 규제 탓에 이행강제금과 벌금을 물어오는 고초를 겪고 있는데, 시가 고은시인에게만 자택제공 등 과한 혜택을 줘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해왔다.

결국 상수원보호구역 해제 추진이 잠정 중단되면서 주민들이 '고은 추방' 운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지난 17일 주민들은 이달 21일부터 6월1일까지 무려 15일 간 고은 시인 자택 앞에서 집회신고를 내 수원시와 고은 시인을 압박했다.

이때까지 주민들은 집회를 실행에 옮기지 않았기 때문에 고은 시인이 심적 압박감 호소 외에 수원지역을 떠난다는 등의 발언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지난 21일 광교 주민 70~80여명이 고은 시인 자택 앞에 모여 '시민혈세 갉아먹는 고은 시인은 당장 광교산을 떠나라'는 현수막을 게시하고, 퇴거를 요구하면서 고은 시인이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광교산 한 주민은 "수원시가 법을 운운하며 광교산 주민들에게 단 1평의 공간도 내주지 않고 범죄자로 몰아가면서 특정인에게는 관대하다"며 "고은시인은 시민의 혈세로 황제의 삶을 누리면서 주민과 단 한 번의 상견례도 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결국 이날 집회를 지켜본 고은 시인이 지인들을 통해 수원을 떠나겠다고 뜻을 밝히자 시는 물론 문학계 등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역 한 인사는 "일단 소문만으로는 진위를 알 수 없기에 상황파악이 우선 필요할 것 같다"며 "상수원보호구역 문제와 전혀 상관 없는 고은 시인을 내쫒는게 말이되냐 "고 반발했다.

한편 수원시는 고은 시인을 접촉해 양해를 구하는 등 대책마련에 나섰지만 뿔이 난 주민들은 앞으로도 집회와 함께 고은 시인 퇴거를 요구할 방침이여서 당분간 논란이 식지 않을 전망이다.

※고은 시인은
한국의 대표적인 참여시인인 고은(高銀·본명: 고은태) 시인은 노벨 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됐다. 세계 20여개국에 번역된 그의 시가 문학계에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1974년 '제1회 한국문학상'을 처음으로 ▲만해문학상 ▲통일상 ▲영람문학상 ▲한국예술원상 ▲제6회 노르드수드상, 문학상 ▲심훈문학대상 등 40여개의 문학 관계상을 수상했다.

고은 시인은 30여년동안 안성시 공도읍 만정리 대림동산에서 창작활동을 했다가 지난 2013년 수원시 요청에 따라 장안구 상광교동(행정동 연무동)으로 전입했다.

수원시는 고은 시인의 수원 거주를 위해 자택을 제공하고, 문학작품의 자료를 수집하는 '고은 문학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