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성패는 '생산-소비 조직화'에 달려 … 사전적 협의 통한 공급량 조정·통제 필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주요 도시의 경제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는 가운데 되레 일자리를 늘리고 또 지역경제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는 도시들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탈리아 동북부의 중심 볼로냐, 캐나다 퀘벡, 그리고 일본의 가나자와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도시가 공통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중요한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역경제가 민간 영리기업이 아닌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경제조직에 의해 주도되고 있어 지역의 경제적 안정성이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볼로냐와 퀘벡의 경우, 도시 전체 기업 중 협동조합 또는 결사체(association)와 같은 사회적경제조직의 비중은 70% 이상에 달하고 있으며, 일본 전통 예술산업의 메카 중 한 곳인 가나자와의 경우 관련 생산자들의 거의 대다수가 생산자협동조합을 결성하고 있을 정도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도시에서 중추 역할을 발휘하고 있는 사회적경제조직들의 고용과 투자의 패턴이다.

일반적으로 영리기업의 경우, 경기변동에 매우 탄력적인 고용과 투자 패턴을 보인다.

쉽게 말해, 경기가 좋을 때, 영리가 목적인 기업은 투자도 늘리고 또 고용도 늘린다. 경기가 나쁠 때는 그 반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영리가 아닌 사회문제 해결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경제조직의 고용과 투자는 오히려 경기변동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지역경제가 좋지 않을 때 고용량도 또 투자량도 늘어난다는 의미다.

재미있는 역설이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그간 위의 세 도시에서 경영활동을 하고 있는 연 매출 20억원 이상의 사회적경제조직들을 관련 통계를 활용해 실증분석을 해왔다.

볼로냐, 퀘벡, 가나자와 모두 경기가 좋지 않을 때 고용과 투자를 늘렸다.

그 이유는 아동, 장애인, 노인, 환경, 재래시장, 문화예술 등과 같은 사회문제는 지역의 경기가 좋지 않을 때 곧잘 발생하는 것들이며 또 심각해지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이 지역경제 전체가 불황에 빠져 있을 때 늘어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의 고용과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고 또 이를 지역의 사회적금융 기관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데, 그 결과 이처럼 과감한 경영은 지역 시민들로부터 탄탄한 '사회적지지'를 받고 최종적으로는 이러한 사회적지지가 소비, 출자, 투자, 기부, 원재료공급, 자원봉사 등과 같은 '경제적지지'로 옮기게 되면서 결국 사회적경제조직은 탄탄한 '시장'과 안정적인 '생산요소'를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둘째, 이들 도시의 사회적경제조직들은 생산자 네트워크를 구축해 생활협동조합 등과 같은 지역의 소비자 네트워크와 늘 항상 지역 내 생산량 또는 서비스 공급량을 상호 공동으로 결정하는, 이른바 '사회적 조정(social adjustment)'을 제도화하고 있다.

일반적인 시장경제 시스템에서는 이와 같은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커뮤니케이션 없이 아주 대략적인 소비량 정보 예측만을 가지고 생산자가 상품을 시장에 일방적으로 공급하게 되고, 시장 내에서 일반적으로 과잉공급의 형태로 나타나는 생산량과 공급량 간의 양적 격차를 시장가격의 변동에 의해 해소하고자 하는 이른바 '사후적' 조정이 지역경제의 핵심 원리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 위 도시에서는 농업, 제조업, 서비스업 등의 한 도시 내 전체 생산량 또는 공급량을 도시 전체의 소비량 또는 투자량의 규모에 맞춰 결정하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상호에 대한 풍부한 정보와 신뢰를 토대로 제도화하는 이른바 '사전적 협의'를 통해 상품을 공급하게 되며 생산자는 재고를 낮춰 이익률을 높이고 동시에 소비자는 보다 믿고 먹을 수 있는 양질의 먹거리와 보다 성능이 좋은 부품 및 제조품 등을 조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볼로냐, 퀘벡, 가나자와의 지역경제는 안정화될 수밖에 없고 또 양적으로도 성장할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 기업 부도도 실업도 좀처럼 나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인천의 사회적경제는 어떠한가. 일각의 정책 노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지역의 사회적경제조직이 그 성공요건으로서의 '사회적지지'를 받는데 얼마만큼 노력해왔는가.

오히려 벤처기업처럼 '시장적지지'를 받는데 처음부터 너무 연연해왔던 것은 아닐까.

또 우리나라 그리고 우리 지역의 사회적경제 관련 정책 또는 지원은 너무 단선적이었다.

개별 사회적경제조직의 경영상황을 양호하게 만드는데 그 초점이 맞춰져 왔다는 의미다.

위에서 언급한 사회적경제 메카 도시들의 사례로도 알 수 있듯 사회적경제의 성패는 지역 내 생산과 소비의 조직화다.

사회적경제를 구성하는 양대 주체, 즉 생산자와 소비자는 협력과 신뢰 그리고 호혜의 정신을 바탕으로 반드시 네트워크를 구축해 시장을 넘어 사전적 협의를 통해 생산량을 조정, 통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칼 폴라니는 '시장'과 '사회'를 상호 대립적인 관계로 간주하며 시장은 사회에 의해 통제돼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이론적으로 역설한 바 있다.

이 때 그가 언급한 사회야말로 생산자 네크워크, 소비자 네트워크, 그리고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수급 조정을 위한 제도화된 커뮤니케이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인천대 사회적 경제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