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 조약 체결지·인천 최초 방송국 자리 …웨딩홀·카페로 태어나다
▲ 1950년대 HLKX 당시 방송국 전경. 방송국이 있던 인천시 중구 북성동 3가 8의3은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장소로 비정됐다.
▲ 오른쪽 하얀 건물이 극동방송 건물외양을 그대로 리모델링한 것이다. 이 건물은 현재 리움하우스웨딩홀로 사용 중이다.
▲ 지난 19일 인천지역 시민단체들이 퍼포먼스 뒤 비정된 자리에 기증한 이미테이션 비석.
▲ 건물 오른편 작은 돌산에 뚫려 있는 동굴. 이 동굴은 일제강점기 방공호로 추정되고 있다.
1958년 HLKX 첫 전파 … 이후 서울로일제강점기 때 추정 동굴 '미스터리'시민단체, 조약체결지 비석 세워


초여름 오후 중구청을 지나 '자유공원'으로 향한다. 삼국지벽화거리와 자유공원으로 갈라지는 언덕 3거리. 삼각형 지붕을 한 하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가자 푸른 정원이 펼쳐져 있다. 잔디밭 위에 놓인 몇 개의 비치파라솔 아래 삼삼오오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이다. 인천시 중구 북성동3가 8의3. '리움하우스웨딩홀'과 '리움카페'.

이 자리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곳이다. 1882년 조선이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곳이자, 1958년 인천최초의 방송국인 '극동방송'(HLKX)이 있던 역사적 장소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은 우리나라가 서양의 국가와 체결한 최초 조약이자 불평등조약이다. 이 조약이 유의미한 이유는 이후 서국 각국과의 조약에 준거가 됐기 때문이다.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장소는 처음 화도진공원과 파라다이스호텔, 자유공원 어딘가의 제3의 장소 등 크게 3가지의 주장이 제기됐었다. 그러나 김성수 관세청 서울본부세관 감사담당관이 2013년 개항 당시 자료를 발견하면서 지금의 리움하우스웨딩홀 자리가 정확한 장소로 밝혀졌다. 이후 인천시사편찬위원회가 학술대회를 열어 이같은 사실을 비정했다.

역사적 사실을 상기하며 마당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커다란 아치형 창문이 나 있고 원형계단, 상들리에가 눈에 들어온다. 천정이 높고 대체적으로 직사각형의 평범한 내부의 모습이다. 나무기둥은 기능보다는 미적인 측면을 고려해 세운 것이다. 이 곳에선 결혼은 물론, 돌잔치, 칠순잔치와 같은 여러 행사가 열리는데 결혼은 보통 잔디마당에서 '야외결혼식'으로 진행한다.

앞서 이 자리에 인천 유일의 방송국이었던 HLKX이 첫 전파를 발사한 때는 1958년 12월23일이다. 한국복음주의방송국으로 출범했다가 1967년엔 극동방송국으로 이름을 변경했으나 이후 서울로 이전하면서 인천방송사의 짧은 역사는 끝난다.

HLKX가 세워지기 전부터 인천은 홀대를 받았다. 일제는 1927년 5월23일 인천 애관극장에서 방송강연회를 개최한 이래 부산, 평양, 대구, 광주 등 전국 21개 지역에 방송국을 설치했다. 그러나 인천의 경우 서울과 '동일 가청권'이라며 방송국 설립을 유보한다.

조우성 인천시립박물관 관장은 저서 <인천이야기 100장면>에서 "1946년 인천시장 임홍재 씨가 인천방송국 설치운동을 벌였으나 서울중앙방송국으로부터 '인천부청의 시간'을 할애받는데 그쳤고 후임 표양문 시장도 문제를 제기했지만 불발로 끝났다"고 밝히고 있다.

그나마 어렵게 세운 극동방송이 서울로 이전할 때 이 곳을 매입한 주인공이 한일개발 신동준(84) 회장이다. 신 회장은 극동방송이 나갈 때 부지를 매입한 뒤 '한국관'이라는 웨딩홀을 설립해 40년 가량 운영해왔다. 이후 임대를 주어 '라파치아 웨딩홀'을 거쳐 '다비스튜디오'로 이름이 바뀌다가 지난해 8월 지금의 최원태(54) 대표가 부지와 건물을 임대해 '리움하우스웨딩홀 & 리움카페'로 운영 중이다. 최 대표는 "처음 이 곳을 임대할 때 역사적 사실을 잘 몰랐는데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장소란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 장소는 문화재로 등록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시정부가 왜 방치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웨딩홀 출입구 오른 편으로 동굴도 미스테리다. 이 동굴은 일제강점기 파놓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동굴을 따라 10여m 정도 들어가다 보면 중간에 막혀 있다. 최 대표는 "일제강점기 군수, 군량미를 저장하거나 피난처 방공호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출입문을 나오는데 오른편으로 커다란 비석 하나가 서 있다. '조미수호통상조약체결지'라고 쓴 이 비는 지난 19일 인천시민단체들이 가져다 놓은 것이다.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장소가 명백히 비정됐음에도 인천시 동구가 '화도진축제'를 통해 조미수호통상조약 재현식을 개최하자 시민단체들이 '역사왜곡'이라며 퍼포먼스를 펼치며 마련한 스티로폼으로 만든 비석인데, 얼핏 봐선 돌비석처럼 보인다. 시민단체는 이날 "동구주민들의 축제가 왜곡된 역사를 근거로 한 정치, 문화 이벤트로 변질되고 있다"며 "조약체결 장소에 대한 제반 역사기술과 기념시설의 재편성에 나서야 한다"며 화도진에 이 비를 설치했다가 철거해 리움하우스웨딩홀에 갖다놓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출입문 앞에 서자 인천앞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135년 전, 이 자리에서 우리의 조상과 미국의 조상이 조약을 맺었다. 2017년 두 나라의 지도자는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으로 바뀌었다. 두 나라는 지금,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논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과거엔 우리에게 불리한 조약을 맺어야 했지만 지금은 그래선 안 된다. 홍석현 미국특사도 "미국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점도 미국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의 이해를 구했다"고 귀국 뒤 밝혔다.

단군이 국가를 세운 이래 우리민족은 온갖 역경과 고난을 딛고 지금까지 반 만년을 지켜왔다. 한민족은 앞으로도 영원히 지혜롭게 이 땅을 잘 지켜갈 것이다.

/글 김진국 기자·사진 유재형 사진가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