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이 말한 진정한 리더는
400여년 전 조선의 이야기지만 어딘지 모르게 현재와 묘하게 닮아 있다. 혼란한 정국 속 새로운 지도자의 탄생, 영화 '대립군'은 현 시대에 어떤 말을 어떻게 전하고 싶었던걸까. 지난 22일 서울 성동구 행당동 CGV 왕십리에서 영화 '대립군'(감독 정윤철) 언론배급시사회가 열렸다.

영화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버리고 피난한 아버지 선조를 대신해 왕세자로 책봉돼 조정을 나눈 '분조(分朝)'를 이끌게 된 소년 광해(여진구)와 생계를 위해 남의 군역을 대신 치르던 '대립군(代立軍)'의 운명적 만남을 그렸다. 나약한 왕세자에서 백성에 의한 또 그들을 위한 한 나라의 임금이 되기까지의 성장스토리를 밀도 있게 담아냈다.

있는 자는 돈으로 사람을 사 군역을 대신하고, '비정규직' 대립군들은 목숨을 담보로 입에 풀칠을 하며 살아간다. 한 나라의 수장인 임금과 고위 관리자들은 백성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한다. 평양까지 왜에게 내준 선조는 명나라로 가고자 한다. 왕세자가 된 지 겨우 한 달된 광해에게 표면적으론 임금이지만 사실상 '화살받이'라는 묵직한 책임감을 주고 결국 떠난다.

험난한 산길 몇 명이 이고가는 가마 안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광해, 죽을 뻔한 상황에서도 책이 불에 탔다며 자신을 지켜준 토우(이정재)의 뺨을 때리는 광해의 모습은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함을 유발한다. 그러다 절벽으로 내던져진 가마에서 나와 현실과 마주하는 광해는 점차 책 속의 백성이 아닌 실제 백성들의 삶을 체감한다. 끝없는 산세를 넘고 장애물을 피해 가는 길, 목적지에서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고초들, 배신은 물론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자신들의 목숨마저 잃을 위기에 놓인 대립군과 광해. 결국 모두 다 누군가의 '대립군'이었던 이들은 고통 속에서 '내가 나로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혹시 아냐, 팔자에 없는 성군이라도 나올지"라는 토우의 대사는 지옥과 다를 바 없는 상황에서도 위대한 지도자를 기다리고 기대하는 민초들의 희망을, 물과 범을 가장 두려워하던 허수아비 왕세자가 이제는 "자네들이 죽는 걸 보는 것이 내 두려움"이라며 백성들을 감싸는 든든한 리더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기에 이른다.

그동안 광해는 미디어를 통해 관객을 자주 만나왔다.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를 통해 이병헌이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바 있으며 MBC '화정'에서는 차승원이 특유의 카리스마로 또 다른 모습의 광해를 보여줬다. 하지만 갓 왕세자가 됐으며, 자신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어머니의 몫까지 다하기 위해, 무거운 짐을 받아들면서까지 아버지의 사랑을 받기 위해, '풍천노숙'하며 민초들과 끝까지 함께하는 광해는 다소 신선하게 다가온다.
배우들의 연기도 한 몫 거들었다. 이정재는 카리스마와 우직한 면모로 '관상'과는 또 다른 캐릭터를 선보였다. 여진구는 혼란과 두려움을 백 마디의 말보다 오롯이 눈빛과 표정, 손끝에 담아내는 연기로 표현했다. 대립군의 야심가 '곡수' 역의 김무열은 야망 가득한 면모부터 헌신적인 모습까지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광해의 의녀 '덕이' 역의 이솜, 대립군의 정신적 지주 '조승' 역의 박원상, 광해의 호위무사 '양사' 배수빈 역시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극에 녹아든다. 이들은 특히 '올로케이션' 작품인 점을 통해 산을 이용한 피난길을 최대한 재현하며 고생을 담보했고, 그 노력은 스크린을 통해 영상미와 함께 감동으로 전달된다.

영화 '말아톤' 이후 9년 만에 신작을 내놓은 정윤철 감독은 "남의 군역을 대신 지는 대립군, 요즘 세상으로 치면 계약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나라의 운명을 거머쥔 광해라는 소년을 만나며 산전수전을 겪고 진정한 리더가 뭔지 깨우쳐 나가는 이야기"라고 작품을 소개했다. 진짜 나 자신으로 사는 게 뭔지를 되찾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대립군'. 조심스레 '좋은 지도자를 만드는 것은 과연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고 있다. 5월31일 개봉, 130분, 15세 관람가.

/송유진 기자 uzin@incheonilbo.com


"수많은 백성을 마음에 담은 광해는 행복한 임금"

이날 시사회엔 대립군의 수장 '토우' 역 이정재, 전란 속 조선을 이끈 어린 왕 '광해' 역의 여진구, 대립군의 명사수 '곡수' 역의 김무열, 광해를 곁에서 보위하는 의녀 '덕이' 역 이솜, 의리파 대립군 '조승' 역의 박원상, 광해의 충성스러운 호위대장 '양사' 역 배수빈 그리고 정윤철 감독이 참석해 영화 뒷 이야기를 나눴다.
5개월 간 외세의 침략으로 인한 '분조'라는 상황에서 대립(對立)하며 '대립군(代立軍)'으로 산 배우들이 느낀 진정한 리더의 덕목은 무엇일까.
여진구는 "극중 '왕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자네는 내 백성이 되고 싶은가'라고 되묻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극중 대사와 같이 진정한 왕은 군주로 자리매김 하는 게 아니라 백성을 아끼고 백성들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백성을 위한 왕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광해의 멘토 역을 톡톡히 해낸 '토우' 이정재는 "영화에서 왕이 백성들과 보리밥을 나눠 먹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모습이 리더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같은 사람이지 않느냐"며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같이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호위무사 역 배수빈은 현재 새로운 정권과 영화를 비교하며 "요즘 너무나도 영화 같은 장면들이 나오고 있어서 얼떨떨하다. 너무나 당연스러운 것들이 이제야 나오고 있어서 기쁘기도 하고 너무 갑작스럽게 이뤄진 거 같기도 하다"고 털어놨다. 이어 "제가 예전에 르완다에서 택시를 탄 적이 있는데 기사님 벨트에 대통령 얼굴이 새겨져 있더라. 그리고 대통령을 사랑한다고 하더라"며 "우리나라도 벨트에 새기고 다니면서 사랑할 수 있는 대통령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소신을 밝혔다.
영화 속 리더 광해와 현재 새로운 리더가 뽑힌 상황에 대해 '사이다' 발언을 한 배우도 있었다. 박원상은 "영화 속 마지막 장면에 광해는 스쳐지나간, 이름 없이 죽어간 함께 했던 수많은 백성들을 마음에 담았다. 그런 점에서 광해는 행복한 임금이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2017년 5월 지금, 새롭게 뽑은 대통령을 보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반면 지금 서울 구치소에 계신 그 분은 불행하지 않을까 싶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글·사진 송유진 기자 uzin@incheonilbo.com